한국의 대학원과 벨기에 대학원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면, 학생들과 지도교수 간의 관계를 제일 먼저 떠올리게 한다. 아무리 이 나라가 수직적인 구조가 거의 없다고 하지만서도, 처음 벨기에에서 박사를 시작하면서 적응하는 데 꽤 오래 걸린 부분은 교수님과 학생 간의 계급이 없다는 것이었다. 실제로 본인과 지도 교수의 관계를 설명해 보라고 유럽 대학원생들에게 물어보면, 대부분이 동료 혹은 팀메이트라는 단어를 사용해서 대답을 한다고 하니, 교수와 학생 간의 관계가 얼마나 수평적인 관계인지를 알 수 있는 부분이다.
이 수평적인 부분이 제일 잘 보이는 건 교수님들이 Professor라는 호칭을 매우 싫어하고, 당연히 자신의 이름이 불릴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한국에서는 학생들이 교수님이라고 부르는 게 당연했고, 미국에서는 Sir 혹은 Dr.라는 호칭으로 교수를 부르는 게 보편적이다. 두 국가에서 공부를 했던 나로서는 이 나라에서도 당연히 교수님이라는 호칭이 통용될까 싶어 교수님께 지원할 때부터 출근한 첫날까지 Professor Blanpain이라는 호칭을 썼고, 출근 첫날 교수님 오피스에 불려 가서 이와 관련한 설명을 들었던 기억이 난다.
실제로 벨기에에서 학생들이 교수들에게 Professor라고 부르는 것은, 본인과 자신의 교수 사이에 심리적 거리를 두겠다는 뜻으로 해석이 된다고 설명을 해 주었었다. 그래서 학생도 교수의 이름을 부르곤 하는데, 교수가 나이가 많든 적든 상관없이 서로 이름을 부른다. 그래서 교수 입장에서는 학생들이 본인 이름을 불러주지 않는 것에 대해서 꽤 전전긍긍한다거나, 아니면 본인이 학생들을 지도하는 과정에서 어떠한 문제가 있었는가를 돌아보게 된다고.
프랑스어로 교수님들과 이야기를 할 때, 교수와 학생 사이에 계급장이 없다는 부분이 가장 잘 도드라진다. 사실 프랑스어에는 한국어의 존댓말에 해당하는 개념이 있고, 그래서 처음 보는 사이라거나 서비스를 이용하는 입장에서는 이 존댓말을 자주 사용하게 된다. 벨기에에서 교수와 학생이 대화를 할 때, 이 존댓말의 개념에 해당하는 주어와 동사 형태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데, 실제로 교수들은 본인에게 반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불편하게 느끼지 않고, 더 나아가 이러한 의사소통이 문제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오히려 서로 반말로 대화를 한다고 해서 문제가 될 의사소통이면, 존댓말을 해도 어디선가 문제가 될 것이라고 인식을 하고 있다고.
또한 교수님과 대학원생 사이에 꽤나 수평적인 관계구나 싶은 부분은, 단순히 교수님께 자신의 진로에 대해 편하게 조언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수님과 커피를 한잔하기도 하고, 때에 따라서는 같이 식사를 하면서 소소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냥 머그잔을 들고 가면 커피를 내려 주시는 교수님도 있고, 아예 초콜릿이나 과자 등을 미리 꺼내 놓고 학생들이 오면 주전부리하듯이 하나씩 까먹으며 수다를 떠는 교수님도 있으니 말이다. 또한 아예 샌드위치나 샐러드 등을 사 와서 점심을 같이 하자고 제안하는 경우도 왕왕 있는데, 그냥 밥 먹으며 농담을 주고받는 게 또 그만의 묘미인 것 같다.
현재 기관에서 코로나 전까지만 해도 PhD day라는 행사를 진행했는데, 교수님과 학생들 모두가 자신의 연구는 물론, 같이 맥주를 마시며 허심탄회한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자리였다. 이때 실제로 교수님과 학생들의 관계를 어떻게 규정할 수 있냐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 교수님들은 “학생과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존중하는 관계고, 특히 교수가 학생을 팀원 내지는 동료로 인식을 한다. 그렇게 때문에 서로 이렇게 수평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이라는 대답을 하셨었다.
단순히 서로의 이름을 부르고, 반말로 디스커션을 한다는 게 서로 존중이 없다는 게 아니라는 것을 벨기에 사회에서 배우게 된다. 상호 존중을 하되 본인이 상대방을 본인이 생각하는 것보다 조금 더 존중해 준다는 것, 그리고 학생과 교수를 서로 팀메이트로 생각한다는 전제는 여전히 재미난 부분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내일은 교수님 오피스에서 커피를 한 잔 얻어 마셔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