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닥 모집은 크게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 모집공고에 지원을 하거나, 가고 싶은 실험실에 따로 지원을 하거나. 전에 교수가 되는 것은 주차장에 차대는 것과 같다는 비유를 본 적이 있는데, 사실 포닥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빈자리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따라서 내 관심분야와 내 이력이 매치되는 곳에 빈자리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다. 즉, 실험실과 내가 상호 간 필요가 충족되는 곳에만 갈 수 있다. 특별히 간절하다고 뽑아주는 것도 아니고 해당 실험실에서 바로 일할 필요한 사람을 뽑는 것이기 때문에 자신감 있는 느낌으로 여러 군데 지원하는 것이 이상적이라 생각한다. 포닥 나가는 것은 나가고자 하는 사람들 모두의 관심사이기 때문에 감사하게도 브릭이나 하이브레인넷에 도움이 되는 후기들이 상당히 많다.
일단 지원에 앞서 꼭 준비해야 할 것은 두 가지이다. CV와 cover letter. CV는 이력서, Cover letter는 자기소개서라고 보면 되는데, 앞서 말했다시피 실험실에서는 일할 사람을 뽑기 때문에 여기서 나를 잘 어필해야 한다. 가장 좋은 것은 주변 선배들의 기록을 받는 것이 좋다. CV는 BRIC에 좋은 샘플들이 많다. 한빛사의 저자들이 보통 CV를 공개하기 때문에 이 부분을 상당히 참조했다. Cover letter는 자세하게 쓰거나 간단하게 쓰거나 할 수 있겠는데, 한 페이지 안쪽으로 쓰는 것이 가독성을 높일 수 있어 좋은 방법이라 생각한다. 길게 쓸 경우 높은 확률로 뒷부분은 안 읽을 것이다. 본인의 경우 cover letter에 들어가는 내용 중 할 수 있는 실험과 본인의 배경을 간단하게 메일 본문에 적고, CV와 cover letter를 첨부파일에 넣었다. 실험실과 매칭 여부가 참으로 중요하다 생각되는 것이 어떤 곳은 심지어 첨부파일을 넣지 않았는데도 회신을 주셨다. 분야가 맞지 않는 곳은 눈에 띄기 위해 자료조사까지 해가며 3장짜리 연구계획서도 첨부하였는데 회신도 없었다. 여하튼 간 자신감을 잃지 않고 꾸준히 지원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생각한다.
구글 검색으로 포닥 자리를 알아보는 방법. 키워드와 필터를 자기에 맞게 수정하면 된다.
지원 시기도 중요한 요소이다. 간간이 구글을 통하여 포닥 검색을 해보는데, 9월경에 자리가 싹 없어졌다가, 11월 8일경 검색했을 때는 좋은 대학들에 자리가 있다가, 11월 18일에는 또 없다. 주변 박사님과 이야기를 나누어 보니 대학에서도 grant를 따낸 후에 여력이 되어 포닥을 뽑는 것 같다. 즉, grant 선정 시기 즈음에 일괄적으로 포닥을 뽑고, 당분간 또 비워져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너무 큰 걱정 말고, 열심히 꾸준히 지원한다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가장 큰 문제는 포기하고 적당한 곳에 지원해버리는 것이 아닌가 싶다. 현재 자리가 없다면 조금 더 기다려서라도 좋은 환경에 가야 한다. 좋은 네트워크와 교수의 영향력이 내 실적에 미치는 영향은 상당해 보인다.
열심히 지원했다면 다수의 곳에서 긍정적인 회신을 받게 될 것이다. 가고 싶지 않은 곳이라면 애초에 지원도 하지 않았을 것이고, 회신이 온 곳이면 모두 적합한 실험실일 것이다. 이 상황에서 어느 곳에 가야 할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한다. 어느 정도 우선순위가 있겠지만 우열을 가릴 수 없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사람 마음이 한편으론 매우 연약해 갈대같이 흔들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좋은데, 우리가 외국으로 포닥을 나가는 까닭은 좋은 논문을 내기 위해서이다.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를 확인해 보면 좋다. 바로 연구비와 교수님 영향력이다. 이를 객관적으로 비교를 해보면 어떤 곳을 가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덜 수 있다.
미국 연구비는 주로 NIH에서 나오기 때문에 이곳의 연구비 현황을 참고했다. RePORT (https://reporter.nih.gov/) 라는 사이트에 PI의 이름을 검색하면 결과를 확인할 수 있다. 물론 NIH 외의 funding은 알아볼 수 없는 게 단점이긴 하지만 큰 맥락에서의 비교는 가능할 것이다. 현재 실험실은 5년여 동안 NIH에서 연 1백만 불 전후의 연구비를 꾸준히 지원받고 있었고, 막상 와서 보니 캐나다와 사기업에서도 연구비가 나오고 있었다. 교수님의 영향력은 가장 직관적으로 총 인용수로 알 수 있다. 대부분 이미 알고 있다시피 Google scholar 검색으로 이 정보를 알 수 있다. 교신저자로 등록된 논문을 확인하는 것도 필수적이지만 총 인용수도 중요한 것이 연구 네트워크의 크기를 짐작해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네트워크에서 인정받으시는 분이어야 다양한 논문에서 공동저자에 포함되는 것이고 이것이 결국 총 인용수를 증가시킨다.
NIH 연구비 상황을 알아보는 사이트. PI 이름을 넣고 검색하면 된다.
긍정적인 회신을 받았다면 다음은 인터뷰가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비대면 사회에서 줌미팅은 모두 아시리라 생각한다. 나의 경우 2월 18일 지원 후 약 22시간 후에 informal interview를 하자는 회신이 왔고, 인터뷰 날짜는 바로 다음날이었고 제시된 인터뷰 시간은 30분이었다. 일과시간에는 일을 했기 때문에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은 하룻밤밖에 없었고, 따라서 날을 새워 인터뷰 준비를 했다. 우선 예상 질문을 뽑아서 19일 1대 1 인터뷰 준비를 시작하였다. 평소 인터뷰를 대비해 어떤 질문을 받을지 고민해두었기에 이에 대한 답변을 작성하였다. 질문은 과학자 커뮤니티와 일반 직장 면접 자료를 종합하여 작성하였다. 질문 리스트는 아래와 같다.
자기소개, 지원 동기, 와서 어떤 연구를 할 것인지, 내 연구 소개 및 활용할 수 있는 부분, 본인 단점, 현재 프로젝트 설명, 펀딩을 어떻게 조달할 것인지, 프로젝트에서 느꼈던 어려움, 직무에서 변화를 만들어낸 적 있는지, 어려움을 겪었던 시기, 직무를 통해 얻고 싶은 것, 직무에서 궁금한 것.
가고 싶은 의욕이 상당했기 때문에 열의도 상당했다. 질문만 듣고 대답할 수 있도록 약 두어 번 연습하고 위기의 순간 볼 수 있도록 답변 내용을 컴퓨터 화면 한 켠에 켜두기까지 했다. 다음날 아침, 인터뷰가 시작되었고, 놀랍게도 준비한 내용은 하나도 쓸 수 없었다. 그냥 일상 대화하듯 질문과 답변이 오갔기 때문에 정식으로 질문과 응답이 오갈 것으로 가정하여 준비한 답변은 시작할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아마 이러한 방식으로 연구과정에서 능숙하게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지를 확인하지 않았나 싶었다. 대화 내용은 과거에 무슨 연구를 했는지, Yale에서도 비슷한 연구가 있었다는 얘기, 그 실험과 우리 실험은 다를 수밖에 없다는 나의 반박, 동물실험은 잘 하는지 정도의 얘기를 했던 것 같다. 전날의 대본보다는 평소 연구실에서 발표를 영어로 하는 문화가 도움이 더 되었던 것 같다.
첫 20여분 간의 대화로 검증이 되었다고 생각하셨는지, 교수님은 갑자기 나한테 한 시간 정도 시간 있냐고 물어보시곤, 본인 연구 내용을 설명해 주기 시작하셨다. 대단히 흥미롭게 들었고, 마지막에 discussion 부분에서 교수님 말씀과 내가 본 데이터들이 맞지 않아 질문하였는데, 그 내용은 안 보여줬다고 하시며 갑자기 중간에 숨겨둔 슬라이드를 펼치고 설명을 하시는 것이었다. 흡사 함정을 건너 뛴 기분이었다. 이것으로 내 영어 듣기 실력과 질문 능력을 평가하신 거였는지 오싹한 기분마저 들었다. 이것으로 관문을 통과할 수 있었는지, 그다음으로 나의 project 발표를 요구하셨다. 시간은 2일 뒤. 시간을 여유롭게 주지 않는 것은 변함이 없다. 처음 각 실험실들에 컨택 할 때에는 일과시간엔 일을 하고, 저녁시간 동안 하루 2군데의 실험실에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 진행했기 때문에 해당 실험실들에 대한 공부만으로도 시간이 촉박하였고 인터뷰 스케줄이 잡히고 나서야 준비를 시작할 수 있었다.
내 CV에 3개의 공동 제1저자 논문을 강조하였고 또한 진행 중인 프로젝트에서 사용한 기술들을 언급하였기에 모든 것을 아우르는 PPT를 준비했다. 1시간 발표에 대부분의 결과들을 포함시켜 잘 한 발표인지는 모르겠으나, 일을 성실히 하였다는 것, 영어로 발표와 토의를 할 수 있다 정도는 전달할 수 있었던 것 같다. 이후 랩원들 인터뷰까지 마치고, final offer를 받을 수 있었다. 추천서는 이러한 과정들이 모두 끝나고 서류 처리를 위해 마지막에 요구받았다. 한국 대학원 교수님들이 추천서를 잘 써주신 덕에 절차를 원만히 마무리 지을 수 있었다.
지금 돌이켜봐도 21년 말부터 22년 출국 직전까지 참으로 바쁘게 살았다. 결혼 준비에 졸업에 포닥 컨택에 프로젝트 마무리에 출국 준비에, 일을 미리 준비할 시간은 여간해서 주어지지 않았다. 하지만 내가 미리 준비된 상태로 다음 스텝을 진행했다면 나에게 주어진 기회를 아마 놓쳐버렸거나 많은 시간 지연된 후에야 잡을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은 정말 확실하다. 나중에 알게 되었지만, 그리고 앞에서도 서술했지만 포닥을 뽑는 시기가 있고 나는 거의 막바지에 기회를 잡은 것과 다름이 없었다. 짧은 준비 시간을 두려워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기에 성공적으로 일을 마무리 지었던 것은 아닐까 싶다.
포닥의 준비와 시작에 이르기까지 필요한 부분들은 개략적으로 설명을 한 것 같다. 개인으로, 아빠로, 또 한 명의 포닥으로 정말 정신없는 6개월을 보내고 있다. 새로운 필드로 뛰어들었기 때문에 채워야 하는 지식의 갭과, 이렇듯 새로운 필드에 뛰어듦으로 인해 백그라운드가 일천한 상황에서, 계약기간이 고작 1년뿐인 포닥의 입장에서 교수님께 내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것, 새로운 실험을 배우고 또한 셋업 해 나가는 것 자체가 모두 스트레스이며 대단한 압박이 가해지는 일이다. 다만 하나 내가 이해하고 믿고 있는 구석이 있다면, 결국 이 실험실은 나의 상황을 아는 상황에서도 내가 필요해서 뽑은 것이고, 내가 시간에 따라 적절히 성장한다면 계속 나를 필요로 할 것이다 라는 점이다.
프로젝트에 대해서 포닥들 간 경쟁이 있었는데, 교수님이 해주신 말이 있다. 포닥의 성공이 내 성공이고, 포닥의 실패는 내 실패다. 나는 누구보다도 너희들의 성공이 필요하다. 현 실험실을 고르게 된 이유 중 하나는 교수님이 부교수라는 점이 있었다. 조교수 혹은 부교수의 경우 승진하기 위해 실적이 필요할 것이며 잘 해내간다면 이 과정에서 어떻게든 나의 실적이 포함될 것이라는 계산이 있어서였다. 나의 계산이 모쪼록 앞으로도 맞아떨어지길 바라며, 이러한 기록들이 새롭게 출발하는 포닥들에게 어떤 도움 될 만한 조언이 되었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