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 좋게도 나는 학위과정 시작을 논문 작업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학위 과정 시작 전 하고 있던 인턴 기간부터 논문 작업에 들어가 1학기 여름방학 즈음에 publish 된 논문인데, 꽤나 나쁘지 않은 저널에 실린 논문이다.
나로서는 연차도 낮고 경험도 적은 내가 논문 작업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매우 감사한 기회로 받아들여졌고, 그래서 부족하나마 잘해보려 (매우) 노력했던 것 같다. 교수님과 거의 1년간 고군분투한 결과 논문이 publish 되었고, 올라간 저널도 괜찮았으며, 덕분에 학교에서 상도 받을 수 있었다.
감사하고 기뻤던 일로 기억되는 일 중에 하나인데, 그런데 어느 날 문득 연차를 불문하고 그렇게 입학과 동시에 논문을 쓰는 나를 보면서 어쩌면 주변 동료들의 마음이 힘들었을 수도 있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저 나 혼자만의 생각일 수도 있지만, 아직 시작된 지 얼마 안 된 신생랩에서 이제 막 학위 시작하는 동료가 논문을, 그것도 랩에서 나오는 첫 논문을 쓰는 것이었으니 누구든 불편함이 들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문득 든 것이다.
그 생각이 더 크게 다가온 계기는 3학기 차에 있었던 학회 참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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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규모가 있는 학회였고, 우리 랩에서도 여러 프로젝트 팀들이 대표를 뽑아 oral presentation 또는 포스터 발표 등에 참가하게 되었다. 나는 내가 아직 많이 부족하다 생각하여 발표에 지원하지 않았다. 때문에 자연스럽게 내가 있는 팀에서는 다른 동료선생님께서 발표를 하게 되었다.
각 팀 별로 몇 주간 준비를 단단히 하고 드디어 학회장에 도착하여 발표를 하는데 모두가 하나같이 너무도 잘해 주었다. 영문 스크립트를 모조리 암기하여 약 3~4분간 흔들림 없이 발표하는 모습, 유명한 교수님들의 질문에도 당황하지 않고 차분하게 영어로 질의응답에 임하는 모습 등이 너무나도 고무적이었다.
그러나, 그 사이에서 나는 아무것도 하는 것이 없었고 그런 내 모습은 초라해 보이기 그지없었다. 특히 거의 랩실의 모두가 하나씩 역할을 맡아서 한몫을 하는 가운데, 내놓을 것이 없는 내 모습이 그 사이에서 너무도 크게 부각되는 듯했다.
게다가 그중 몇몇은 상까지 받는 게 되었는데 그런 모습들을 보며 많이 속상했다. 그러던 중에 문득 한참 내가 논문 쓰던 때가 떠올랐다.
아직 선배들의 논문조차 논문작업에 들어가지 않았던 나의 학위 기간 초반에 제일 저년 차로서 논문작업에 몰두해 있던 내 모습을 보며 다른 동료들이 불편함을 느꼈을 수도 있었을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에게 잘해주고 응원해 주던 그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힘들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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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무거운 마음으로 학회에 참가하고 있던 중 문득, 이 경험은 어쩌면 내가 또 한 번 넘어야 할 성장통과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마음속에서 필터링 없이 스며 나오려 하는 불편한 마음들은 접어 둬야겠구나 대신 축하와 박수를 보내야 할 때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얻은 결과물은 결코 그냥 얻어진 것이 아니고, 그만큼 고민과 노력을 했고 그 대가로 받은 것이니 응당 축하해 주는 것이 맞다는 생각을 했다. 마냥 부러워만 하고 있을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 길로 나는 학회장 근처에 있는 꽃집에 전화를 했다. 꽃다발을 수상 인원수 대로 준비하고 수상이 끝나자마자 각자에게 전해주었다. 동료들은 생각지도 못한 꽃다발에 놀라면서도 좋아했다.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인사를 건넬 수 있었다.
“축하해요!”
서로의 성장을 함께 기뻐할 수 있었던 순간이었다. 기쁨이 두 배가 되는 것 같았던 그때, 정말 순수한 마음으로 나도 그들처럼 나의 성과물을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도록 더욱 열심히 하고 싶어지는 생각도 들었다.
타인의 노력과 성공을 인정하고 기쁘게 축하해 줄 때 결국 나에게도 그것이 기쁜 일로 되돌아 옴을, 그들에게서 배울 점 또한 더 순수한 마음으로 배울 수 있다는 점을 새롭게 깨닫게 된 학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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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위과정뿐만 아니라 무언가를 하다 보면 내가 앞서 나갈 때도 있지만, 타인이 나보다 앞서 나가는 때도 있다. 내가 앞서 나갈 때는 크게 상관이 없지만 타인이 앞서 나갈 때는 사람 된 마음으로서 참 복잡한 마음이 들 때가 많은 것 같다.
타인의 잘 됨을 어떻게든 부정하고 싶고, 타인의 성과에 흠집을 내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그런 대처법은 결국 나에게 생채기만 낼뿐 나의 발전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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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서로 다른 꽃들이 서로 다른 시기에 피어 아름다움을 뽐내는 것처럼 나는 각자에게는 각자가 가장 빛나는 시기가 따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다름을 인정할 때 다양성과 조화로움을 만들어 내고 어우러지는 아름다움을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처럼 타인의 빛나는 시기가 나와 다를 수는 있지만 가장 나답게 피워낼 수 있는 열매를 향해 포기 않고 노력해 나간다면 언젠가는 자신의 때에 가장 빛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포기만 하지 말자.
Q. 임상의 대신 의사과학자가 되기로 한 결정이 후회가 된 적은 없으신가요?
후회한 적이 아주 없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아직까지는 크게 후회한 적은 없는 것 같다.
물론 임상을 하게 되면 직접적으로 얻는 보상으로 어느 정도 보장되는 급여와 환자들이 바로바로 회복되는 것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등이 있는데, 이는 일반적인 대학원 생활에서는 경험하기 어려운 부분이기 때문에 이러한 요소들이 가시적으로 보이지 않으면 힘들 것 같은 사람이라면 임상 쪽 대학원이 아닌 일반 대학원 생활을 그리 권하고 싶지 않다.
(뚜렷한 목적과 목표가 없다면 일반대학원은 너무도 버티기 어려운 것 같다...)
그러나, 급여 부분에서는 요즘은 일반대학원 자체적으로도 의사과학자 과정을 걷고자 하는 의대 졸업생들에게 따로 장학금을 지급하는 학교들도 있다.
또한 국가적으로도 한국보건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융합형 의사과학자 양성사업도 있어서 의사면허를 가진 의대 졸업생이라면 기초의과학 또는 융합과학 분야를 선택했을 때 국가로 부터 일정 부분 지원을 받으며 학위과정을 밟을 수 있기 때문에 이 부분은 다소 고무적인 부분이 있다고 말할 수 있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