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최근까지 나는 나 자신이 의대 출신임에 대해 은연중에 의식 아닌 의식을 하고 있었다.
© Pixabay
의대출신이면 이 정도는 해낼 것이라는 타인들의 기대치가 상당히 민감하게 다가왔다. 기대치나 타인의 시선 따위 아랑곳하지 않고, 내가 해야 할 일들에 더 집중하고 최선을 다했으면 좋았을 텐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런 기대치나 타인의 기준에 부응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볼 때 내가 나 자신을 잘 보살펴 주지 못했던 것 같다.
석사 2학기 말부터 3학기 초까지 슬럼프가 왔다.
잘하면 원래 잘 해내야 하는 것이라 스스로를 채찍질했고, 혹여 타인들의 기준에 크게 못 미치는 내 모습이 보일 때면
나는 나 자신을 나무라며 괴롭게 했다. 내가 나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사실은 나의 의지를 더 꺾게 하고 지치게 하는 요소였는데, 그때만 해도 나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하고 있었다.
© Pixabay
건강이 점점 안 좋아지는 것 같아서 찾았던 병원. 대학원 생활을 힘들어하고 많이 지쳐하는 나에게 주치의 선생님은 “동료에게도 하지 못할 말은 스스로에게도 하지 말라” 는 조언을 해 주셨다.
아차 싶었다. 누구보다도 내 편이 되어주어야 할 나 자신이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니… 나 자신에게 많이 미안해지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괴로운 마음에 어쩔 줄 몰라하는 내 모습이 동료들의 눈에도 보였던 걸까? 더 이상은 나를 괴롭히지 말고 궁극적인 해결책을 찾아야겠다 마음먹은 그즈음 동료 몇몇이 나에게 찾아와 말을 걸었다.
그들은 내 상태를 걱정해 주었고 나에게 먼저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그제야 나는 내 상태를 되돌아보고 점검할 힘이 생기는 듯했다. 그에 힘입어 나는 내가 처음 대학원을 들어올 때 했던 다짐들을 하나 둘 떠올려 보았다.
의대졸업, 나이와 같은 계급장은 모두 떼버리고 만약 내가 부족한 점이 있다면 조금 부끄럽더라도 여기서 채우겠다 마음먹었던 것들, 남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달려왔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족한 점이 있었다면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음을 인정하자 마음먹었던 것들과 그 부족한 부분들을 나는 여기서 채울 것이고, 여기서 완성되어 나가겠다 마음먹었던 것들이 하나 둘 떠올랐다.
‘그래, 내가 의사가 아닌 “과학자”로서 성장하기를 선택했다면 다른 건 생각하지 말고 온전히 독립적인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부족한 부분을 채우는 데 오롯이 집중하자. 그게 내가 여기 있는 이유고 목적이다.’
© Pixabay
다시 한번 마음을 겸손히 가다듬었다. 그리고 나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민 동료들에게 나의 부족한 점들에 대해 조언과 도움을 구해보았다. 감사하게도 그들은 친절하면서도 인내심과 존중하는 태도로 나의 부족한 점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고 그에 대해 개선할 방법들에 대해서도 차분히 이야기해 주었다.
그렇게 그들의 조언을 참고로 하여 하나 둘 내가 해 볼 수 있는 것들을 실천해 보았다. 그리고 나 스스로도 슬럼프와 위기를 조금 벗어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던 어느 날, 한 동료 선생님께서 나에게 많이 성장한 것이 보인다는 조언을 해 주셨다.
좀 더 열심히 해야 하긴 하겠지만 그래도 전에 비하면 많이 성장한 것이 눈에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니 많은 생각이 들었다. 내가 만약 나 자신의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고 계속해서 나를 괴롭히기만 했다면 어땠을까? 동료들의 조언과 도움에 대해 오히려 화를 내고 듣지 않았더라면? 아마 나는 위기를 극복하지 못하고 실패했다는 아픈 기억만 가득 안고 중도탈락 했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문득 들었다.
© Pixabay
진정 “과학자”로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다른 비의대 출신 선생님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손색이 없을 정도로 나 자신이 채워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적으로 기초과학 쪽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는 나의 모습을 인정할 수 있는 용기와
그 부족함들을 차근차근 차곡차곡 채워나가는 인내심이 필요한 것 같다.
Q. 의사과학자로 학위를 마치고 나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이 있나요?
크게 두 가지 트랙으로 나뉘는 것으로 보여진다. 교직에 남거나, 회사에 취직 하는 것.
대부분이 원하는 교수가 되는 길은 다른 것들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좋은 연구력이 많이 받쳐줘야 한다. 최근 의과대학들의 임용기준을 보면 최근 3-4년 연구 업적을 제출하도록 하고 있고, 특히 수도권 의대의 경우 해외로 포닥을 다녀온 후 Nature급 논문을 필요로 한다. 이러한 기준들을 봤을 때, 첫째로는 좋은 연구력이 중요하며, 티칭 역량은 그 다음 능력으로 생각된다.
회사에 취직하는 옵션으로는 주로 바이오헬스 산업 계열로 진출, 기업 내에서 연구직이나 의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신약개발, 임상시험의 디자인과 관리 업무를 하는 메디컬 디렉터 역할을 수행하는 직무를 맡는 것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