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후 연구원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 대기업 연구원의 오후
종합 / Bio통신원
소금빵 (2023-01-06)

12:30
꿀맛 같은 점심시간이 끝나고 실험실에 돌아와 Incubation 이 진행되고 있는 Plate에 Stop buffer를 분주한다. 이후 결과를 분석하기 위한 Plate 들을 Microplate reader 기에 찍어 O.D 값을 확인한 후 정량 값과 에러값을 확인한다. 출력한 인쇄물들마다 페이지 번호를 남기고 검토자, 작성자 서명을 하며 Factor 값은 제대로 입력되었는지, 검체명은 제대로 기입되었는지 입력한 조건들을 확인하는 작업을 가진다. 1박 2일 동안 진행한 실험이 이대로 끝나면 좋을 텐데 아직 실험은 끝나지 않았다. 오전에 코팅하거나 Over night으로 코팅한 플레이트들을 Blocking 하고 검체 분주를 준비한다. 실험 단계들이 크로스로 반복돼서 초반에는 많이 헷갈렸다. 한 개의 타이머에 시간 3개가 따로 돌아간다. 지금 울리는 2번 타이머는 무슨 스텝을 해야 하는지, 3번 타이머는 1시간 남았는데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바로 떠올리는 적응 시간이 필요했다.

1:30
Blocking 후 1시간 안에 검체 분주 준비를 모두 끝내야 하는데 이때 시간이 많이 걸린다. 분주해야 하는 Plate 수와 혈청형에 맞게 Cluster tube의 volume을 계산하고 dilution 할 버퍼를 제조한다. 검체, QC, Standard를 따로 준비하며 희석하는데 혈청형 별로 Buffer 도 따로 만들고 초기 희석 배수도 다르기 때문에 헷갈리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이 Step 은 Cluster tube를 희석하는 과정이 중요하고 에너지가 많이 소비되는데 정확하면서 신속한 실험 능력이 필요하다. 

2:25 
타이머가 울리고 검체 분주를 한다. 보통 검체 분주는 50 마이크로리터가 들어가는데 에러값을 줄이기 위해 주의를 기울인다. 나는 모든 Step 중 검체 분주 전, 후 이 Step 이 에너지 소모가 가장 크게 느껴진다. 한 번은 이런 생각을 했다. 영화 ‘신과 함께’ 에는 지은 죄에 따라 형벌이 내려지는 장소들이 나온다. 나는 오늘 Cluster tube에서 96 well로 분주를 하는데 이 팔이 분주를 멈추지 않는다면 이곳은 지옥일 거라 생각했다. Washing 되어 나오는 Plate들이 마르기 전에 분주해야 된다는 압박감과 Plate 양은 엄청난 체력 소모를 가져온다. 본분석을 하는 시즌에는 피곤해 보인다는 말을 매일 듣고 산다.

3:00
일주일에 한 번 정기적인 주간 미팅이 있다. 한 주 동안 진행했던 서로의 업무를 공유하고 팀 내 정해야 하는 일과 논의할 부분을 보통 이때 논의하고 정한다. 이를 위해 미팅 자료와 팀 내 공유해야 할 사안들을 미팅 전 정리하고 준비한다. 미팅이 끝나면 개인들의 PPT를 메일로 매주 송부하여 보고한다. 각자가 하고 있는 일을 알 수 있고 다 같이 모여 얘기할 수 있는 자리이다. 또, 팀마다 다르지만 팀원들이 돌아가며 스터디를 하는 경우도 있다. 자료를 찾고 공부하고 발표 자료를 준비하여 발표한다. 자료 서칭과 공부는 연구소 때에 재직할 때도 많이 하던 일이라 큰 거부감은 없다. 생명공학 분야는 대학원을 졸업해도 공부가 끝이 없고 자료를 모색하고 조사하는 일이 많다. 일을 하면서도 끊임없이 공부하고 받아들이는 시간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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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


16:00
요일에 따라 4시에 할 일이 다르다. 나의 실험 스케줄은 대부분 4시가 넘어 끝나기 때문에 이때부터 결과를 정리하거나 미팅을 들어가는 등 분석이 아닌 일을 할 수 있다. 분석이 많은 날 또는 프로젝트를 하는 분석 기간에는 보통 4시에 실험이 끝난다. 오늘의 실험은 끝났지만 이후 미팅에 참석하거나 결과를 정리하고 작성하는 일을 한다. 또, 분석 업무 외에도 계획서나 보고서를 작성하거나 문서를 검토하고 필요한 사항을 요청하는 메일을 쓰다 보면 어느새 퇴근 시간이 다가온다. 8시에 시작한 실험이 4시 정도에 끝나는 날이면 몸과 마음과 라텍스 장갑이 너덜너덜해진다. 프로젝트가 시작하면 라텍스가 찢어질 때까지 실험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 날이다. 실험이 너무 고돼 이것은 고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 영화 '신과 함께'처럼 사후세계에 지옥이 있고 지옥의 형벌이라는 게 있다면 생명공학을 전공한 사람에게는 죽어서도 매일 하루가 반복돼 하루 종일 실험을 하는 형벌이 딱이겠다는 조금 슬픈 생각을 했다.

17:00
퇴근 시간이다. 남은 업무를 처리하다 보면 훌쩍 시간이 흐른다. 타 회사나 주변을 둘러보면 보통 야근하는 것은 잔업이 남아 일처리를 잘 못한다는 인식인데 반대로 생각하는 곳도 있는 듯하다. 이런 인식들이 시대에 발맞춰 빨리 개선되면 좋겠다. 야근을 하다 보니 워라밸과 수평적인 문화가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요즘이다.

나는 뚜껑이 열리는 스포츠카를 타고 싶은데 이대로 가다가는 자동차도 못 살 것 같다는 생각이 들자 이직을 해야겠다고 확신했다. 그렇게 나는 좋은 복지와 높은 연봉을 찾아 대기업으로 이직했다. 이곳에서는 나이대가 비슷한 사람들과 일 해서인지 나이가 어려서 일을 못 할 거라는 편견 없이 일하고 있다. 또, 경험을 바탕으로 할 수 있는 일의 역량과 기회가 주어진다. 실험은 명확하고 객관적인 지표에 근거하는 WHO 가이드라인을 따르기 때문에 어느 부분에서 실험이 잘 못 됐는지 쉽게 알 수 있다. 단순히 ‘이 사람 손이 이상하네, 금손이네’와 같은 말을 들을 필요가 없었고 나는 그동안 이런 말들이 싫었다. 과학을 하는 사람들이 자신만의 근거를 가지고 사람들을 재단하고 속단하는 말들이 싫었다. 실험하는 사람에게 이런 프레임을 씌우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했고 이직한 후 이런 말들을 듣지 않아 좋았다. 하지만 나는 이직을 하면서 워라밸을 지키지 못할 때가 많다. 3-4달에 걸친 프로젝트가 끝날 때면 높은 파도에 싸대기를 맞아 해변으로 굴러 나가떨어지는 상태가 된다. 서핑에서는 좋은 파도를 기다리며 파도를 타는 타이밍이 중요한데 살인적인 스케줄로 높은 파도만 오니 마치 보드에 일어설 시간조차 없다고 느껴졌다. 이렇게 힘든 날들이 지속되면 많은 대한민국의 직장인이 그러하듯 출근 전부터 퇴근하고 싶다는 마음이 든다. 실험 스케줄이 힘든 날이면 3분을 쪼개어 화장실을 가고 업무 중 팀원들과의 커피타임은 실현하기 어렵다. 빡센 다람쥐통에 들어간 기분이었다. 한 번은 야근을 하고 밤 9시가 넘어 퇴근을 하는데 지하철 역 가는 버스 안에 사람이 너무 많아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아침 출근 시간만큼 많은 사람들 속에 치여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가는데 서있을 힘도 없어 서글펐다. 이 시간에 지하철은 왜 또 앉을자리가 없는지 대한민국 직장인의 표본을 보여주는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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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Pixabay


적지 않은 시간 동안 준비하여 원하는 회사에 왔음에도 모든 것에 만족할 수 없었다. 지금은 모든 것을 만족하는 회사가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일과 퇴근 후 시간을 더 철저하게 분리하여 퇴근 후 나만의 삶을 재미있게 보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집에 오면 밥 차려 먹을 힘도 없는 바닥난 체력임에도 힘을 짜내어 운동을 하고 산책을 한다. 기력이 없지만 저녁에 약속을 잡아 지루한 평일을 특별한 평일로 만들기도 한다. 때론 나에게 주는 보상으로 집 가는 길에 맛있는 초밥을 포장하고 넷플릭스를 보며 혼자만의 저녁을 즐긴다. 매일 반복되는 평범한 하루이지만, 힘을 내는 게 더 힘들 수 있지만 조금만 노력해 본다. 나의 하루들은 너무나 소중하고 값지기 때문에 내가 좋아하는 시간을 보내며 하루를 마무리해 본다. 이것이 내가 회사를 다닐 수 있는 원동력이다. 각자의 자리에서 오늘도 열심히 하루를 보낸 사람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사진 출처
1. https://pixabay.com/ko/photos/%eb%8f%84%ec%8b%9c-%ec%9a%b4%ec%86%a1-%ec%8b%9c%ea%b0%80-%ec%a0%84%ec%b0%a8-%ed%86%a0%eb%a1%a0%ed%86%a0-4490237/
2. https://pixabay.com/ko/photos/%ec%a7%81%ec%97%85-%ec%82%ac%eb%ac%b4%ec%8b%a4-%ed%8c%80-%ec%82%ac%ec%97%85-5382501/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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