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부생 때 다녀온 인도 여행 이후로 가보고 싶은 곳이 몇 군데 생겼다. 그중 하나로 생각해왔던 티베트를 목적지로 정했다. 지금도 그런지 모르겠는데 그때는 티베트로 여행을 가려면 외국인 방문 허가증이 있어야 가능했다. 외국인 방문 허가증을 북경 공항에서 돈을 주고 사서 티베트로 가는 비행기를 타야 했는데 백수라 돈도 없었지만 왠지 아깝다는 생각에 다른 방법이 없을까 찾아보다 육로로 이동하는 루트를 발견했다. 비공식 루트이긴 했지만 배낭 여행자들 사이에서는 공공연하게 알려진 방법이었다. 그렇게 인천에서 배를 타고 천진으로, 천진에서는 버스로 북경까지 이동하고, 북경에서는 기차로 티베트 국경 근처까지 갔다가 다시 버스로 티베트의 수도 라싸로 진입하는 꽤 긴 루트를 찾았다.
북경에서 라싸까지 비행기로 가면 하루 만에 갈 수 있는 곳을 인천에서 배 타는데 하루를 보내고 천진에서 북경으로 이동해서 또 하루, 북경에서 4일에 걸쳐 가려다 보니 출발 후 6일 만에 라싸에 도착할 수 있었다. 의도한 건 아니었는데 그동안 내가 지나온 시간 같았다. 목적지에 도착하는 빠른 길이 있음에도 에둘러 왔었던 지금까지의 시간과 닮아 있었다. 물론 방법이 꼭 한 가지만 있는 건 아니니 시간 차는 있겠지만 돌아가는 길이라도 무언가 얻을 수 있는 게 있지 않을까.
어찌 됐든 내가 인복이 있는 건지 가는 곳마다 좋은 사람들을 만났다. 겁 없이 혼자 간 여행이었지만 내가 만난 사람들은 아무 대가 없이 나를 도와주고 챙겨줬다. 다만 내 마음이 낯선 사람들이 베푸는 호의를 경계하고 의심했을 뿐이다. 모든 건 마음의 문제인 것을 나중에야 깨닫게 됐다.
중국은 비자를 받아야 여행이 가능한데 비자 기간이 정해져 있다. 나는 30일짜리 관광 비자를 받아서 모든 일정을 그 안에 끝내야 했다. 여행 가기로 마음을 먹고는 중국 들어가는 방법, 첫날 숙소, 마지막 날 숙소 정도만 정해놓았다. 앞으로의 내 미래처럼 어디로 흘러가게 될지 모르는 여행이었다. 30일이란 기간이 긴 것 같지만 티베트 국경을 넘기까지 거의 일주일을 소비하고 나니 시간은 생각보다 넉넉하지 않았다.
첫날 천진에서 북경까지 버스를 타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늦은 저녁이었다. 숙소까지는 같이 버스를 탔던 몇몇 사람들과 인력거 같은 걸 타고 이동했었다. 배만 꼬박 24 시간을 타고 천진에서 또 버스를 2 시간 정도 타고 가는 여정이라 첫날은 꽤 피곤하기도 했고 시간도 늦어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다음 날 아침 기차로 이동하기 하기 위해 북경역으로 가는 길에 만난 어린 친구는 내 배낭이 무거워 보인다며 들어주겠다고 다가왔었다. 달랑 지도 한 장만 가지고 어느 기차를 타야 하나 들여다보고 있는 나에게 영어로 말을 걸어줬던 첫 친구였다. 다들 당연하다고 하겠지만 무작정 의심부터 했었다. 짐을 들어주겠다고 하고 나중에 돈을 달라고 하거나 짐을 가지고 도망가거나 둘 중 하나라고 생각했었고, 그 친구도 처음에는 그런 의도로 접근했을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북경을 떠날 때는 그 친구에게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기차역까지 가는 길을 자세하게 알려주고 내가 돈 없는 가난한 학생이라고 거리를 두려고 했을 때도 오히려 걱정해 주던 그 친구에게 선입견을 가졌던 내가 참 씁쓸했다. 결국 그 친구에게 사정이 딱한 여행객이었던 나는 뻔뻔하게 만두까지 얻어먹고 무사히 기차를 탔다.
기차에서는 말은 안 통했지만 마음씨 좋은 아저씨를 만나 한자를 종이에 써가면서 어떻게 버스를 타고 라싸로 들어갈 수 있는지 얘기했었고, 마침 같은 칸에 있던 목적지가 같은 대학생들을 소개해줘서 같이 갈 수 있는 기회가 생겼다. 내 생에 학교에서 배운 한자를 가장 잘 써먹었던 순간이었다. 기차에서 내려서 중국 대학생들과 섞여서 버스를 타려고 했는데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요금을 5 배나 더 내라는 부당한 요구에 열변을 토하면서 항의한 기억도 난다. 사람이 화가 나면 언어 영역이 비약적으로 활성화될 수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버스 출발 시간까지 실랑이하다가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될 것 같아서 중국인 대학생들과 헤어지고 거기서 하루 더 묵으면서 다른 버스를 찾아보려고 했는데 다음 날 결국 같은 요금을 주고 버스를 탔었다. 30일짜리 비자에 여유가 없었기도 했고 컨디션도 좋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드디어 바다 건너 대륙을 지나 티베트의 수도 라싸에 도착했다.
북경의 해넘이
그 흔한 디카도 없고, 핸드폰 로밍도 하지 않고 시작한 여행은 길 가다 만난 여러 사람들의 도움으로 지금까지도 가장 기억에 남는 혼자만의 여행이 되었다. 혼자 하는 여행의 묘미를 깨달은 나 홀로 첫 여행이었다.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가장 고민했던 것은 짐 싸기였다. 완벽한 계획을 세우고 그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도 있지만, 평소에 어느 때 어떤 일이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세부 일정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달간의 여행에 얼마만큼의 짐을 싸야 하는지는 도통 감이 오지 않아서 처음 여행을 생각했을 때처럼 무작정 적당한 배낭을 사고 긴급 의약품과 옷가지 몇 개, 침낭 정도만 챙겨서 출발했다. 정말 간단하게 준비했다고 생각했던 배낭도 여행 내내 무거운 짐이었다. 여행 중에는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눈으로 보이는 것에만 집중하자고 생각했었는데 다행스럽게도 무거운 배낭과 낯선 환경에서 적응하느라 정말 내 미래 같은 건 한 줌 걱정거리도 안 됐었다. 출발 전까지만 해도 고민했던 일들이 막상 여행이 시작되면서 아무것도 아닌 게 되었다.
국경을 무사히 넘어 도착한 라싸의 게스트 하우스에서 만난 일본인 할머니는 남편이 정년을 한 후로 같이 전 세계를 여행하다가 고산 지대인 티베트는 함께 여행이 힘들 것 같아서 혼자 왔다고 했다. 이 여행을 위해 중국어를 공부하면서 여행 계획을 짰다고 하시면서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몸만 왔던 나에게 여러 가지 도움을 주셨다. 정말 대단한 할머니였는데 지금은 이름도 얼굴도 기억이 나지 않는 게 무척이나 아쉽다. 할머니와의 만남은 나중에 내가 나이를 먹어서도 저런 열정을 가지고 살 수 있을까 생각해 보는 계기가 됐었다. 또 다른 룸메이트 중 하나는 배우가 꿈이었던 일본인 청년으로 자전거로 세계 여행 중인데 돌아가면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게 될 거라고 했다. 본인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그 친구는 어떤 선택을 하게 될까. 이 친구와는 아직도 가끔씩 연락을 하는데 일본으로 돌아가서 결국 가업을 이어받았고 의외로 그 일이 적성에 잘 맞았는지 한국으로 사업을 확장했다. 올드 타운 가는 길에 만나서 같이 택시를 탔던 티베트인 학생은 중국 본토에 있는 대학에서 공부 중인데 방학이라 고향에 왔다면서 나를 집으로 초대했다. 일층에서는 동물을 키우고 집은 이층으로 올라가야 하는 독특한 구조의 티베트 전통 가옥이었다. 그 당시 나라 안팎에서 티베트의 독립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시기였는데 본인이 중국인임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하는 그 학생의 얘기를 듣고 있자니 어딘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하늘의 호수라로 불리는 남초 호수는 티베트의 3 대 호수 중 하나이자 세계에서 4번째로 높은 곳에 있는 호수라고 했다. 가는 길은 험난했지만 눈앞에 마주했을 때는 번잡한 마음들은 정말 티끌같이 느껴졌다. 용기 내서 가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는 말을 실감했던 순간이었다. 그 순간을 지금도 가끔 생각해 본다. 일이 잘 풀리지 않거나 미래가 답답할 때 지금 이 순간이 한낱 티끌과 같음을 다시 상기시키면 왠지 마음이 편해지는 느낌이다.
떠나길 잘했고, 잠깐 쉬어 가길 잘했고, 앞으로도 이런 시간이 필요하겠구나 생각하면서 다시 일상으로 돌아왔다.
하늘과 맞닿은 호수-남쵸 호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