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후 연구원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 대기업 연구원의 오전
종합 / Bio통신원
소금빵 (2022-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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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연구원은 무슨 일을 할까? 어떻게 일할까? 나는 입사하기 전, 그들의 일하는 방식이 궁금했다. 연구소가 아닌 기업이 궁금했다.

내가 일한 기업은 프로젝트, 시험법 별로 나뉘어 연차, 직급, 석박사 학위에 크게 상관없이 경험 위주로 일이 주어졌다. 내가 취업 준비 기간 동안 여러 기업에 자기소개서를 쓰고 면접을 보면서 느낀 점은, 실험 경험이 평가 요소에 제일 크게 반영된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입사하자마자 별도의 적응기간이나 인수인계 없이 바로 분석 업무에 투입되었고 회사에 새로운 사업이 진행될 때도 연차가 낮은 내게 외국계 기업 제안서를 쓰고 새로운 시험법을 Set-up 하는 일이 주어졌다. 나는 현재 면역을 유도하는 백신을 만들기 위해 면역 반응 측정 시험법을 구축하고 검증하며 인간이나 동물의 혈청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다. 보통 백신 분석은 백신을 맞기 전, 후를 비교하거나 상이한 백신 또는 Booster shot을 맞은 검체를 분석하면서 임상 허가에 기여한다.

이번 편은 기존 형식과 다르게 '분(min)' 단위로 움직이는 대기업 연구원의 하루를 소개해보고자 한다.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들어본 적이 있거나 혹은 이미 잘 알고 있을 것 같은 ELISA에 대입하여 글을 써본다. ELISA는 실험 스텝만 보면 단순해 보일 수 있지만 백신 종류가 1가 혹은 11가, 21가 등 가(Strain) 수가 너무 다양하며 국내외 여러 Site에서 들어오는 검체의 수는 몇 백개가 넘는다. 입사 전 연구소에서 실험했던 ELISA plate는 많아봤자 5개가 넘지 않는 항체가 확인 시험이었다면 대기업에서 수행한 시험들은 1박 2일로 진행되는 실험 속에 Cross로 금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Plate 코팅을 한다. 또 혈청형별로 이들의 코팅 농도, 조건과 스텝별로 희석배수들이 다 다르니 매우 까다로운 실험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 ELISA를 하는 사람들은 모두 퇴사한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6:20
직장인들의 아침은 1분이 너무나 소중하고 중요하다. 아침시간에 조금이라도 게으름을 피우고 안일한 마음을 갖는 순간 바로 출근 시간이 달라지기 십상이다. 콩나물시루 같은 지하철에 앉아 가기 위해 나의 아침 준비 시간은 실험처럼 시간별로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회사 근처 지하철역 도착 시간까지 20분 남짓. 나는 이 시간을 이용하여 책을 읽는데 아침 시간을 20분씩만 활용해도 한 달에 책 1권은 보통 읽고, 많으면 2권까지 읽을 수 있어 꽤 알차게 보내고 있다.

7:50
업무 시작 10분 전. 나의 실험은 보통 8시부터 시작된다. 남은 10분은 커피를 마실지 말지 고민하고 사가기 좋은 시간이다. 회사 앞에 사내 커피보다 더 싸고 맛있는 카페가 생겨 출근길에 매일 고민하며 커피를 사는 날도 있고, 안 사는 날도 있다. 이왕이면 실험이 없거나 조금 늦게 시작하는 경우 커피를 사 가는데 커피가 있으면 하루의 시작이 조금 즐겁다. 커피를 사지 않는 날은 10분 전 사무실에 도착하여 간단하게 바나나, 요플레, 쉐이크를 먹어 오전 활동량을 위한 배를 채운다. 도착하자마자 편한 사무실용 신발로 갈아 신고 간단하게 배를 채우고 텀블러를 씻고 물을 뜨면 금세 10분이 지나간다. 종종 회사 앞에서 같은 팀원들을 만나면 안부 인사를 하며 크고 작은 일들을 공감하고 공유한다. 평상시에는 서로의 업무가 너무 바빠 얘기할 시간이 별로 없기 때문에 안부 인사를 주고받을 좋은 타이밍이다.

8:00
가운으로 갈아입고 보호구를 착용하여 실험실에 들어선다. 실험실은 내 기준에서 불빛이 다소 어두침침한데 정신없이 일하다 보면 금세 적응해 버린다. 아침 8시임에도 볼텍스 소리와 기계들이 작동되는 소리가 실험실 가득 들리면서 이미 실험을 진행 중인 연구원들이 있다. 나는 실험대로 가서 필요한 Plate 수에 맞춰 하루 전날 미리 준비해둔 튜브와 시액을 꺼내고 각자 맡은 농도의 dilution을 시작한다. 보통 E tube, 15ml과 50ml cornical tube 들을 각각 농도에 맞게 준비한다. 이후 최종 dilution 된 튜브로 plate를 코팅할 동안 한 명은 Microplate washer 기를 준비한다. 한 번 실험할 때 plate 판 수가 96 well 기준 보통 20개~30개 사이이기 때문에 Microplate washer기 준비는 필수이다. washing 준비는 washing buffer와 3차 D.W 를 채우고 Prime을 돌린 후 Plate 확인까지 끝나면 준비 끝. 8:25분 전까지 코팅한 plate를 씰링 후 incubation 시키면 코팅 스텝은 끝이 난다. washer 기가 없는 상상을 잠깐 해봤는데 생각하고 싶지 않을 정도로 너무나 끔찍하다. 연구원들은 허리디스크뿐만 아니라 터널 증후군도 경계해야 한다. 내 몸은 내가 지켜야 한다.

8:25
Over night 한 플레이트들을 2차 항체 분주 준비를 한다. 2차 항체 농도는 혈청형별로 다르고, 재분석이 있을 경우 volume을 유의하여 농도별로 dilution 후 plate washing을 한다. washing 이 끝난 plate는 순서에 맞게 2차 항체를 분주하고 분주가 끝나는 대로 incubation time을 이용하여 여러 할 일을 한다. 보통 washer 기는 3대 정도 쓰는데 순서에 맞춰 나오는 plate 들을 분주하고 씰링 하다 보면 기계처럼 분주하고 있는 나를 볼 수 있다. 이때, 다음 일은 뭘 할지, 처리해야 하는 일은 무엇인지, 오늘 점심 메뉴는 무엇일지 혼자 생각에 잠기곤 한다.

8:45
2차 항체 분주가 끝나면 다음 스텝인 Substrate Buffer를 분주하기 위해 시약을 칭량하고 시약을 녹일 Buffer를 만든다. Buffer는 보통 필요한 powder를 각각 칭량하여 용매와 혼합한 후 pH를 맞춘다. 내가 기존에 했던 ELISA는 이미 만들어진 시약을 사서 썼기 때문에 pH meter 장비를 쓸 기회가 없었는데 시액 대부분을 직접 만들어 쓰니 장, 단점이 있는 것 같다. 시액을 만들었으면 다음으로 시액 조제 기록서를 작성하고 칭량한 결과물을 출력하여 제조한 과정을 기록으로 남긴다. 또, 실험 결과를 분석하기 위해 Microplate reader 기와 templete 디자인을 한다.

9:45
보통 실험 한 스텝이 끝나면 바로 다음 날 실험을 위해 튜브와 시액들을 준비해 놓는다. 30분 정도 시간이 남으면 오피스에서 메일을 확인하고 해야 할 일을 체크한다. 실험 결과를 정리하여 작성하거나 보통 실험실에서 하지 않는 서류 작업과 검토, 타 부서와 논의, 협의 등을 한다.

10:25
연구원들은 실험에 들어가기 5분 전에 약속한 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washing 장비를 준비하고 다음 스텝을 위한 준비를 한다. 칭량한 Substrate powder를 만들어 놓은 Sub buffer에 녹여 분주 준비를 한다.

10:50
오전 실험은 끝! 오늘의 점심메뉴를 확인 후 정기교육 온라인 강의를 수강하고 사무 업무를 처리한다. 시약이 입고될 경우 수령 후 등록 요청 메일을 작성하고 발주 넣은 물품을 수령하며 점심시간을 기다린다. 특이한 이벤트가 없을 때는 보통 이 시간에 업무를 처리하지만 이슈는 예상치 못한 곳에서 자주 생기곤 한다. 타 부서에 업무 협조를 해야 하는 일과 이슈가 생각보다 많다. 계획에 없던 예상치 못한 일이 생기면 이런 자투리 시간들이 바빠진다.

 

 대기업 연구원의 오전

그림 출처: Pixabay


12:00
즐거운 점심시간. 꽂힌 메뉴가 아니거나 모두 먹고 싶은 메뉴가 나올 때는 메뉴를 고르기 더욱더 어려워서 신중해진다. 먹는 것에 진심인 나는 점심 메뉴를 고르는 일이 진지하다. 메뉴를 너무 고르기 어려울 때는 집단 지성의 힘을 믿으며 사람들이 많이 먹는 메뉴에 줄을 서거나 줄 서는 시간을 아낄 수 있는 짧은 줄에 서기도 한다. 식당 줄을 서면서 팀원들과 소소한 이야기들을 나누며 일 얘기는 꺼내지 않는다. 점심시간에 일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은 암묵적인 매너가 되었다. 점심을 먹은 후에는 팀원들과 다 같이 회사 근처를 산책하고 커피를 마신다. 겨울이 끝나면 해가 길어져서 기분이 좋다. 겨울에는 점심시간이 유일하게 해를 볼 수 있는 시간이며 계절의 변화를 느낄 수 있다. 일주일새 나무와 기온과 꽃이 빠르게 달라진다. 매주 바뀌는 나무와 꽃의 변화를 보면서 계절과 시간이 빨리 지나가는 것을 체감한다. 사원증을 목에 걸고 있지만 회사 건물 밖에 나오면 가벼운 발걸음으로 약간의 자유로움을 느낀다. 날씨가 좋은 날에 그리고 좋지 않은 날에 (매일이라는 뜻) 시간을 마음대로 계획해서 쓸 수 있는 대학생의 방학과 취준 기간의 시간이 너무나 그립고 부럽다. 산책하는 길 그대로 퇴근해서 집에 가고 싶은 충동이 들지만 이곳에 있는 직장인들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다시 돈 벌러 들어간다.

다음 편에 계속!

사진 출처 
1. https://pixabay.com/ko/photos/%ed%99%88-%ec%98%a4%ed%94%bc%ec%8a%a4-%ed%94%84%eb%a1%9c%ea%b7%b8%eb%9e%a8-%ed%94%84%eb%a1%9c%ea%b7%b8%eb%9e%98%eb%a8%b8-2452806/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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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6)
옥낭자  |  2022.12.23 13:47     
비정규직이고 언제 짤릴지 모른다는 고민을 진짜 많이 했던 것 같아요
모든 연구원들 응원합니다~
네이버회원 작성글 메그**  |  2022.12.24 00:25     
벌써 끝이 보이네요 너무 아쉽네요 잘읽었습니다!
davidson  |  02.23 13:02     
더 슬픈 현실은 공공기관에서 포닥이란 이름으로 이 비슷한 일을 적은 급여로 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연구라는 단어, 박사라는 말, 그리고 정책과 나라의 비전, 미래란 말이 인구절벽처럼 최저임금처럼 이렇게 와 닿는 현실..

의사는 연구란 단어에 매력과 로망이 있어 연구라 하지만 그 깊이는 다시 관료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수준에서 멋짐으로 행하는 놀이수준(진짜 연구를 놀이 삼아 했으면, 그리고 그 열정과 의지가 또한 연구 결과로 반영되는 선 순환이길 바라나..)
대한민국에서 과학 연구가 과연(교육과 박사는 그저 취직과 면허증 수준으로 전락한 이 시대)
인구절벽이란 현실이 부단 돈과 주택이란 근본적 문제라는 점을 모두 알고 있으면 누구도 이 기본을 이야기 하지 않고 MZ니 여권이니 하는 말로 호도 하며 프레임만을 만들여하는 현실이, 국가에서 4차산업 항공산업, 미래 산업등을 말하며 과학을 이용하는 이 현실은 본질과 기본은 없이 모두 겉멋과 따라감이 본질인 줄 알고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은 아닌지~~~

기계처럼 돌아가는 이 일마저 고맙고 또한 밥을 먹여주어 다행으로 여기며 살아가는 것이 본질인지에 대한 많은 학자 연구자 또는 행정가가 고민해 주길 바랄 뿐입니다.
소금빵  |  02.23 22:27     
@옥낭자님 안녕하세요? 소금빵입니다. 우리나라에서 과학을 미래비젼중 하나라고 말하지만 뒷받침 되는 현실은 냉혹하기만 합니다.. 부디 미래에는 조금이나마 마음 편하게 할 수 있는 연구와 교육 환경이 되길 바라봅니다. 세상에 나온 저의 글들을 통해 다시금 돌아보고 고민하고 조명받을 수 있길 바래봅니다..!
소금빵  |  02.23 23:07     
@메그**님, 안녕하세요? 늘 꾸준한 관심 너무 감사합니다^^
소금빵  |  02.23 23:15     
소금빵 | 02.23 23:13 삭제
@davidson님, 안녕하세요? 댓글과 관심 가져주셔서 감사합니다. 공공기관과 포닥이라는 말만 들어도 생공을 전공한 사람이라면 어떤 느낌인지 알 것 같습니다.. 좋아서 시작한 연구와 공부는 낮은 보수와 열악한 환경 속에 빛을 잃어가는 듯 합니다. 말씀하신대로 정부부처, 행정가, 학자 모두 다같이 고민해 나아가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씩이라도 변화하는 대한민국을 같이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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