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누구나 꿈이 뭐냐는 질문을 한 번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거다. 하지만 어른들의 질문에 솔직하게 대답한 적은 없었다. 그냥 적당히 폼 나고 밥벌이에 최적인 뻔한 직업에 대해 말했었지만 나의 진짜 꿈은 천문학자였다. 별 보는 것도 좋았고 별자리 찾는 것도 좋아서 별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었다. 하지만 내 꿈은 별처럼 너무 멀리 있었다. 적당히 점수에 맞춰 지원한 학과 면접에서 왜 본 과를 지원했냐는 물음에 솔직하게 점수 맞춰서 왔다고 말했었다. 면접관 중 한 분이 그럼 원래 하고 싶은 게 뭐냐고 물어보시길래 천문학을 공부해 보고 싶었다고 얘기했던 기억이 있다. 그때 무슨 생각으로 그렇게 말했는지 지금도 의아하긴 하다. 최종 합격 통지서를 받았을 때 마냥 기쁘진 않았지만 한편으로는 안도했었다. 형편 상 재수는 허락되지 않았고 솔직히 자신도 없었다.
입학 후 면접에 들어오셨던 교수님께서 별은 아니지만 여기 서도 새로운 것을 찾고 연구도 할 수 있다면서 실험실 생활을 해 볼 것을 권하셨다. 그렇게 신입생 때부터 실험실 생활을 하기 시작했고 학부를 졸업하면 당연히 대학원을 가는 수순을 밟게 될 거라고 생각했었다. 과 특성상 실험 수업도 있어서 혼합물에서 단일 물질을 분리하고, 다양한 단백질을 gel을 통해 확인하는 등 간단하지만 이론으로만 배웠던 내용을 직접 실험으로 확인하는 일은 재미있었다. 수업이 끝나면 실험실에 가서 비이커나 유리 파이펫을 닦아서 멸균하는 일이나 랩 청소하는 일을 했다. 내 위로 한 학번 위인 선배 두 명과 번갈아 가면서 교수님 오피스 청소도 했었다. 그 당시 파스퇴르 회사와 공동 연구를 하고 있었던 터라 관련 실험도 참여했는데 그 실험 때문에 밤을 새웠던 적이 많았다.
지금은 흔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생소했던 위산에 강한 유산균을 분리, 동정하는 실험이었는데, 다양한 균주를 받아 와서 pH 별로 배지를 만든 후 배양을 시켰다. 배지에서 배양하면서 살아남은 유산균 수를 시간 별로 counting 하는 단순한 실험이었는데 4 시간 간격으로 24 시간 동안 체크해야 하는 일이라 한 번 실험을 시작하면 실험실에서 먹고 자면서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있던 랩은 기업과 공동 연구를 해서인지 다른 랩보다 여유가 있어서 시약이나 장비도 잘 갖추고 있었지만 학생 인건비에 대한 개념은 없었다. 지금이야 랩에 있는 학부생에게도 인건비나 등록금 일부를 지급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대부분은 그냥 경험을 쌓는다고 생각할 때였다. 그래도 교수님이 다양한 경험은 시야를 넓게 한다며 방학 때 해외에 갈 기회를 주셨다.
내 생에 최초의 비행기 여행, 그것도 해외로의 여행이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제주도 가는 비행기도 타보지 못했는데 첫 비행기 여행이 해외라니! 교수님 말씀대로 그때 나의 시야는 넓어졌다. 학문이 아닌 여행에 대한 시야가! 2 학년 여름 방학 때 3 학년 선배들의 랩 졸업 여행에 껴서 간 첫 여행지는 인도였다. 그때부터였는지 이후에도 큰 결정을 앞두고 혼자 여행 가는 버릇이 생겼다. 한국에서 뉴델리로 가는 직항을 타고 도착한 공항에 내리자마자 끈적한 습도와 더위 때문에 기내식으로 먹었던 음식을 그대로 게워냈었다. 처음 느껴보는 향신료 냄새와 뜨거운 바람은 여행 내내 힘들었지만 뉴델리에서 분홍 도시 자이푸르를 거쳐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세계 유산으로 지정된 사원이 있는 카주라호, 아잔타 석굴사원, 무역 게이트웨이 뭄바이까지 20일 동안 인도 대륙을 횡단하면서 많은 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을 만났던 시간은 지금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다. 길거리에 먹었던 짜이가 정말 그리웠는데 최근 우연히 강릉에서 짜이를 파는 가게를 찾아서 새삼 그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미래에 문제가 생긴 건 졸업을 코앞에 둔 시점이었다.
그 당시 우리 과는 졸업 시험이 아닌 연구 발표 및 심사를 통해 졸업이 결정되는 시스템이었다. 3학년 때 랩을 선택해서 1 년 동안 실험을 하고, 4학년 때 실험 결과에 대한 발표를 했었다. 지금으로 따지면 대학원 졸업을 위한 디펜스 과정과 비슷했다. 이러한 시스템 때문이었는지 그 당시 실험실 생활을 거쳐 대학원을 가는 학생 수가 꽤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1학년 때부터 실험실 생활을 했기 때문에 3학년 때 따로 실험실을 선택할 필요 없이 같은 랩에서 졸업을 준비하면 되는 거였는데 문제는 4학년 2학기에 지도 교수님이 건강 상의 문제로 휴직하시면서 시작됐다. 졸업은 어찌어찌한다고 해도 지도해 줄 교수님이 안 계시니 대학원을 가려면 다른 실험실로 옮겨야 하는 상황이 됐다. 그때 다른 실험실로 옮겨서 대학원을 갔었다면 지금은 다른 삶을 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다. 뭐가 얼마나 달라졌을까? 아니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까?
어쨌든 그때가 당연한 수순에 첫 번째 브레이크가 걸린 순간이었다. 대학원에 진학하지 않은 다른 동기들은 대부분 편입이나 취업을 준비하고 있을 시기에 나는 새로운 선택의 순간을 맞이했고 결국 한 템포 쉬면서 미래에 대한 고민을 해 보기로 결정했었다. 사실 대학 입학하자 마자 선배의 권유로 실험실에 들어간 이후부터 졸업 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해 보지 않았었던 것 같다. 졸업하면 당연하게 대학원에 가고 대학원을 졸업하면 취업도 훨씬 잘 될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했었다. 문제가 생기고 나서야 언제 어느 때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무언가를 준비해 둬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나마 입학하면서부터 실험실 생활을 한 덕분에 졸업하고 3개월쯤 후에 연구소 생활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학부 때 조교였던 선배가 대학원 졸업 후 국책 과제 연구원으로 연구소에 들어갔는데 과제 시작 한지 얼마 되지 않아 공무원 시험에 합격하는 바람에 공석이 된 자리에 추천을 받아 얼떨결에 연구소에 들어가게 되었다. 연구소 쪽에서 어느 정도 실험 경험이 있는 사람을 추천해달라고 요청이 왔는데 선배가 나를 그 자리에 추천해 줬던 거다.
그렇게 첫 연구원 생활이 시작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