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사 후 연구원이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법] 비영리 연구소 연구원
종합 / Bio통신원
소금빵 (2022-11-25)

대학원 졸업 후 취준생이었던 나는 운 좋게 감염병을 다루는 바이러스 연구팀에 취업했다. 끝날 듯 끝나지 않는 코로나가 이어지며 꽁꽁 얼어붙은 취업시장에서 일자리를 구했다. 첫 번째 지원이었고 나의 정식적인 첫 번째 회사였다. 마감 전 하루 만에 준비한 이력서가 운 좋게 면접까지 이어졌고, 지원한 부서는 대학원 전공과 다르지만 공통된 것을 먼지만큼이라도 엮으며 부단히 노력한 결과 내가 원하는 팀에 입사했다. 박테리아와 바이러스는 비슷할 것 같지만 너무나 달랐기 때문에 지원서를 제출한 후 걱정 반, 설렘 반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다. 바이러스에 대해 아는 게 없는데 잘할 수 있을까 하는 걱정, 역설적이게 새로운 분야를 배운다는 설렘 그리고 더 이상 냄새나는 박테리아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쁨이 있었다.

비영리 연구소 특성상 많은 연구원들이 박사 학위를 보유하고 있을 줄 알았지만 연구소 내의 박사 학위 비율은 예상외로 높지 않았다. 팀들은 보통 6명으로 이루어졌는데 박사 학위 비율은 팀 당 많으면 2명이고 대부분 석사 후 연구원들로 이루어졌다. R&D 업무는 박사 학위가 필수인지, 아닌지, 박사 학위가 있으면 얼마큼 좋은 건지 궁금증이 있었는데 좀 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대기업도 상황은 비슷했고 정부 출연 연구소, 기관이 아니라면 석사 학위로도 일을 하는데 충분하다는 결론이 났다. 내가 대학생 때부터 꾸준히 참여하고 있는 멘토링에서 어느 분이 이런 말을 해주신 적이 있다. ‘연구는 운전하는 것과 같다. 석사 학위는 운전을 하기 위해 운전면허를 취득한 것이고 박사 학위는 취득한 운전면허로 가고 싶은 곳을 간다.’고 비유하셨다. 박사 학위 진학에 고민이 있는 경우, 자신이 석사 학위 이후에도 하고 싶은 연구가 있는지 고민해 보면 좋을 듯하다. 석사 학위 동안 논문 읽는 법, 연구하는 법, 실험 스킬 등을 배우는데 석사 후 취업을 하면 이렇게 석사 과정 때 배운 것들을 이용하여 새로운 실험을 습득하는데 이해가 빠르고, 모르는 것이 나왔을 때 거침없이 논문을 찾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발휘된다. ‘연구’에 대한 뜻이 더 이상 없으면 연구소가 아닌 산업체를 선택하면 된다.
 

비영리 연구소 연구원

사진1. 연구하는 모습 (출처: Pixabay)


내가 속했던 팀은 흔히 한 번씩은 들어봤을 메르스, 사스, 코로나를 포함한 고위험군 바이러스를 연구한다. 바이러스 연구 팀이었지만 생공 안에서 세부 전공들은 모두 달랐고 다른 팀들도 비슷했다. 완벽하게 맞는 전공을 한 사람을 찾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내가 취업할 당시 코로나 바이러스가 출몰하기 전이었고 바이러스와 감염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과 관심도가 낮았으니 바이러스 전공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가고 싶은 회사 또는 팀이 있다면 전공이 다르다는 이유로 지원 전부터 겁먹을 필요는 없는 것 같다. 되면 좋고, 아님 말고. 취업은 운빨이 너무나 크다.

이곳에서 나는 다양한 팀원들을 만나며 한층 성장할 수 있었다. 우선 나는 대학원 전공이 병원성 박테리아였고 학부 때는 생태학과 미생물을 접했으므로 면역학 실험에 많이 쓰이는 세포를 다룰 기회가 없었다. (생공을 전공했다고 꼭 세포를 기본적으로 다뤘을 거란 생각은 버리시길. 세포 실험 말고도 바이오인포매틱스, 생태처럼 다른 분야들도 있다.) 바이러스 실험은 대부분 세포 배양이 기본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곳에서 그동안 접하지 못한 세포 배양과 실험들을 배웠다. 또, 대학원생 때는 실험 방법을 일방적으로 배우고 교수님이 시키는 논문을 만들며 타의적으로 실험했다면, 여기서는 바이러스를 배양하거나 실험을 위한 SOP를 직접 찾으며 팀장님과 직접 소통하였다. 팀장님이 나에게 실험이나 과제를 맡기기 위해 SOP를 주시면 그것을 숙지하고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을 질문하는 방식으로 피드백을 받았다. 나 혼자서 생각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듣고 배우며 성장해 나아가는 나를 보았다.

내가 일했던 연구소들은 대게 빡빡한 실험 스케줄이 없었고 마감일이 다가오는 과제들이 아닌 이상 대게 고요하고 잔잔했다. 의뢰를 받아 진행하는 프로젝트는 실험하는 연구원들이 데드라인을 협의할 수 있어 계획적이면서 안정적인 스케줄을 만들 수 있었고 실험 환경에 집중할 수 있었다. 성과를 내기 위한 업무적 압박감도 없었고 영리를 추구하는 회사가 아니기 때문에 대부분 여유로운 문화가 존재했다. 또, 직책이 나눠지지 않았기 때문에 수평적인 구조면서 승진 개념도 존재하지 않았다. 동료들 중에서는 이런 고요함과 평온함을 추구하며 안정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현재 빡빡한 삶 속에서 살아가며 이때를 돌아보니 이런 평온함의 소중함도 느껴지며 살짝 그리워졌다.

또 한 가지 좋은 점을 말하자면 연구소에는 외국인들이 많았고 워라밸이 지켜지는 연구소 특성상 자기 계발을 제대로 할 수 있었다. 나는 이 시간들이 흘러가도록 내버려 두기에는 아깝다고 생각하여 놓치지 않고 최대한 활용하였다. 외국인 동료들과 식후 커피타임을 하거나 함께 트러블 슈팅을 하면서 필요할 때 도움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토종 한국인이었기 때문에 외국인 친구를 사귀거나 대화할 수 있는 인적 자원의 소중함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처음엔 말 거는 것부터 어려웠지만 어느새 만나면 반갑게 인사하는 동료가 되었다. 

 

비영리 연구소 연구원

그림 2. 회의하는 모습 (사진 출처: Pixabay)


그렇지만 이렇게 워라밸이 잘 지켜지는 환경임에도 낮은 보수, 위험수당 부재, 직무에 대한 고민 등으로 이직을 생각하게 된다. 연구소는 내가 생각한 회사의 이미지와 달랐고 연구가 나랑 맞는 것인지 계속 고민했다. 연구를 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방향 또는 문제점을 찾을 때 아이디어를 제시해야 하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기 위해서는 배경지식이 많아야 한다. 배경지식이 많기 위해서는 많은 공부를 하며 논문을 읽어야 한다. 이런 과정들이 나랑 잘 맞는지 많이 생각하고 고민했다. 대학 생활이 교양 수업, 동아리, 봉사 활동 등 전공 수업만 듣는 것이 아닌 것처럼 나도 회사에서 연구만 하고 싶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연구만 하고 싶지 않다는 말이 어폐가 있을 수 있지만 연구뿐만 아니라 다른 능력이 발휘되는 일에도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가령 대기업에서 현재 실험하는 일 외에도 경영팀과 협업하여 문서 체계를 도입하는 프로젝트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기 위한 제안서를 작성하는 일들을 하고 있다. 하지만 연구소에 몇 년 다니면서 말 그대로 ‘연구’에 집중되어 있는 환경을 보며 나의 잠재력을 발휘하고 싶어졌다. 나는 분명하게 할 줄 아는 일이 더 많은 사람이라 생각했다.

이후, 나는 석사생부터 이어진 연구소를 떠나 고대했던 산업체인 대기업으로 이직을 하게 된다.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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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4)
네이버회원 작성글 메그**  |  11.26 16:39     
오늘도 유익한 글 감사합니다
소금빵  |  11.28 09:29     
@메그**님, 안녕하세요? 오늘도 댓글 감사합니다^^ 좋은 하루 되세요!
미기  |  11.29 13:37     
잘 읽었습니다

저도 이와 비슷하여 지난날을 되돌아보게 되네요 ㅎㅎ
소금빵  |  12.05 08:32     
@미기님 안녕하세요! 댓글 남겨 주셔서 감사합니다ㅎㅎ 비슷한 경험을 가진 분들을 만나면 반갑더라구요 재밌게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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