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험실 이야기] 연구자가 할 일은 감탄이 아니라, 남을 감탄하게 하는 것이다
종합 / Bio통신원
hbond (2022-09-20)

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제게 월요일은 바쁜 날입니다. 지도 교수님과의 개인 미팅이 있는 날입니다. 지난 한 주 동안 했던 모든 일에 대한 보고를 해야 합니다. 모든 실험이 성공적이었고, 데이터가 많으면 별 걱정이 없습니다. 그러나 데이터가 신통치 않거나, 딱히 중요한 결과가 없다면, 깨지는 날입니다. 그래서 아침부터 분주하게 자료를 검토하고, ppt에 오타는 없나, 실험 자료 해석은 문제가 없나, 이것저것 확인하느라 신경이 예민해집니다. (사람 사는 것은 어디나 다 비슷합니다. 그러니 지구 방방곡곡에서 깨지시는 연구원 여러분, 힘내세요.)

그런데 누군가 제 이름을 부릅니다. 뒤를 돌아보니, 우리 과에서 전기/기계적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해결사 아저씨 A입니다. 지난달에 연구실을 이사한 후, glove box의 재설치 위해서 판매회사에서 사람들이 와서 일을 마쳤습니다. 그들이 떠나기 전에, 기계가 잘 작동하는 것을 확인하고, 서류에 사인을 했는데, 그 뒤로 갑자기 이 기계에 문제가 생겨서 해결사 아저씨와 그 기계의 담당자인 대학원생 B가 같이 일하고 있었습니다. "이봐, 내가 기계를 살펴보다가 기계 내부에서 질소 기체가 흐르지 않는 것을 발견했어." 안 그래도 미팅 준비로 바쁜데, 다짜고짜 기계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일단은 "그래요?" 응답을 하고는 계속 이야기를 들었는데, 사실 A아저씨와 B가 하던 일이라 저는 도무지 뭔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아저씨, 잠시만요, B가 와서 같이 들으면 더 좋겠네요." 재빨리 B를 불러서 같이 이야기를 계속합니다. 아저씨의 주장은, 원인은 모르겠는데, 기계 내부에서 질소 기체가 순환을 하지 않아서 산소와 수증기의 농도가 높아진다고 합니다. 옆에서 B는 계속해서 '그렇군요', '아, 그래서 그랬군요', 감탄사만 넣고 있습니다. 저는 지금 빨리 가서 다시 ppt를 확인해야 하는데, 아저씨의 말씀은 끝이 없고, 책임자 B는 남 얘기하듯이 감탄사만 연발합니다.
 

연구자가 할 일은 감탄이 아니라, 남을 감탄하게 하는 것이다


2-3주 전, 토요일 밤에 야구장에서 야구를 보고 있었는데, 급하게 이메일이 들어옵니다. 대략 9pm 정도였습니다. '연구실의 glove box가 작동을 안 하는데, 도대체 뭣들 하는 거야?' 교수님의 이메일입니다. 저는 사실 glove box를 사용하지도 않지만 포닥이라는 이유로 모든 연구실에 관련된 이메일을 받습니다. '제가 지금 out of town인데, 이따가 연구실에 들러서 확인해 보겠습니다.' 제가 간다고 기계가 살아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아는 것도 없고(초기에 기계 설치 시, 사용자 교육은 받았지만, 기계의 고장에 대한 지식이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은 사용자가 기계에 손대는 것을 회사 쪽에서 싫어하기에, 잘못 손대면 서비스를 거부당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메일을 받았으니 뭔 말이도 해야겠기에, 그렇게 답장을 보냈습니다. 다시 답장이 옵니다. 'out of town이면, 일 천천히 보고, 이 일에 대해서 신경 쓰지 말아라.' 오케이, 아주 땡큐입니다. B도 눈치를 봤는지 그제야 연구실에 들려 확인해 본다고 합니다.

아무튼, 이 장비가 고가이고, 필요한 장비이기에, 교수님이 신경을 많이 쓰고 있고, 그래서 잘 관리가 되어야 하는데 일이 이렇게 되었습니다. 교수님은 신경 쓰지 말라고 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정말로 신경을 안 쓰면 '사회생활 101'을 다시 수강해야 합니다. '아닙니다. 제가 돌아가는 대로 바로 확인하고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제가 사용하는 기계도 아니고, 별로 아는 것도 없는데, 제가 무슨 조치를 취하겠습니까 만은 그래도 말 한마디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니, 일단은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실제로 저는 그 뒤로 B학생과 이 일에 대해서 의논을 했고, A아저씨에게 의뢰를 했습니다. 그 이후로 A와 B가 실질적으로 일을 했습니다.

제가 A에게 물었습니다. "화면에 보면 펌프가 작동을 하고 있는데, 왜 기체가 순환하지 않죠?", A아저씨는 "난 그건 모르겠고, 이 기계는 작동하지 않아." B는 옆에서, "음.. 그렇군요." A아저씨는 갑자기 연구실을 나가더니 바로 옆의 교수님 방에다 대고 말합니다. "아무개 교수, 당신네 기계 고장 났어." 저는 속으로, '악... 아저씨, 지금 무슨 일을 하시는 거에요. 제발...'

사람은 위기에 강해야 합니다. 저는 배운 모든, 모든 지식, 화학/물리/화공/전자/기계/생화학/약학/동물실험을 총동원해서 순식간에 머리를 짜냅니다. 그리고 대략 1초 만에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A아저씨, 그럼 이렇게 해 보면 어떨까요? 기계의 전원을 완전히 내렸다가 올리도록 하죠. 제가 지난번에 회사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 이 기계에는 circuit protection 기능이 있어서, 오류가 일어나면 부분적으로 전원이 차단된다고 했거든요." 뭔가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사실 다 뻥입니다.

그런게 어디 있습니까? 하지만, 그냥 제 생각엔, 박스 내부의 산소와 습도의 농도가 높아서, 검출기들이 쏟아내는 전류의 양이 커져서, 아마도 중앙처리 장치가 오작동을 일으킬 거라는 의심은 있었습니다. (이런 것들은 박사과정에서 질량분석기를 직접 설계하고 제작을 해 본 경험이 있어서 나온 결론이었습니다. 예, 맞습니다. 제가 직접 설계도를 그리고 제작을 해서, 그 기계 가지고 실험해서 졸업했습니다.) A아저씨는 전원을 차단하고, 열을 센 다음 다시 전원을 켭니다. 매직 타임입니다. 기계는 우우웅 소리를 내면서 작동을 시작하고, 박스 내부에 질소가 다시 순환하기 시작합니다. A아저씨는, "오... 되네." 하시고는, 저를 쳐다보고 웃습니다. "그럼, B야 화면 보고, 기체 농도를 틈틈이 모니터링해줘. 나는 먼저 간다."
 

연구자가 할 일은 감탄이 아니라, 남을 감탄하게 하는 것이다


예전 같으면, B를 불러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겠지만, 이젠 귀찮기도 하고, 그런 게 말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고, 저도 바빠서, 빨리 제 자리로 돌아와서 미팅을 준비했습니다. 자신의 기계가 고장 났다는 얘기에 추임새를 넣는 것 외에는 별 도리가 없는 B는 얼마나 답답한 마음이었을까요? 하지만, 기계가 고장 난 것이 아니라, 내가 사랑하는 사람이 물에 빠졌다고 바꿔서 가정해 보면, 그래도 추임새만 넣고 있었을까요? 그냥 뭐라도 해봐야 하는 게 아닐까요? (아, 또 꼰대력이 상승하는 순간입니다. 죄송합니다. 그리고 저, 기계를 흠모하고, 사랑하고, 기계를 보면 느끼고 하는 이상한 사람 아닙니다. 그냥 예를 들어 그렇다는 것입니다.)

연구를 하다 보면, 이런저런 일들이 매일같이 발생합니다.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만 하지 말고, 들러 붙어서 그 원인까지 찾는 습관이 없으면, 항상 남에게 의존하게 됩니다. 조금은 시간이 걸리고, 힘들더라도, 계속해서 문제를 푸는 연습을 하다 보면, 나중에는 어떤 문제가 발생해도, 크게 두려워 않고, 침착하게 문제를 해결하는 자신을 보게 됩니다. 연구라는 직종은 남을 감탄케 하는 일이지, 절대로 감탄만 하는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남을 감탄케 하려면, 지금 당장, 문제를 인식하고, 뭐라도 해야 합니다. 행하는 것은 무척 중요합니다.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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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안녕난세포야  |  09.20 23:48     
이러나 저러나 박사 짬이 괜히 있는게 아니져...
hbond  |  09.21 23:49     
안녕난세포야 님, 댓글에 감사합니다. 제 생각엔 그냥 얻어걸린 것 같습니다. ㅎㅎㅎ.
좋은 하루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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