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험실 이야기] 세상을 탓하지 말고,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종합 / Bio통신원
hbond (2022-09-05)

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아침에 출근을 하면 컴퓨터를 켜는 일로 보통 하루를 시작합니다. 그리고 밤새 배달된 이메일을 하나하나 꼼꼼히 챙겨서 봅니다. 때로는 제가 알지 못하는 분들에게서 오는 이메일도 있어서 조심스럽게 모르는 이들로부터 배달되는 이메일도 열어봅니다. 오늘은 물건 주문과 관련된 이메일이 하나가 와 있었습니다. 제가 일하는 곳은, 물건을 주문할 때, 구매부서에 주문 의뢰를 하면, 구매부에서 대신 물건을 주문하고, 계속해서 주문 현황을 이메일로 알려줍니다. 저는 물건 주문을 자주 하는 편이라 구매부에서 오는 이메일이 많습니다. 구매부서의 직원이 대략 10명 정도 되는 것 같은데, 매일 다른 사람과 이메일을 주고받다 보니, 대충 구매부 이메일이면 열어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구매부서의 직원이 자주 바뀌어서, 이름을 외울만하면 새로운 직원이 오기 때문에, 구매 관련 이메일은 보통 그냥 열고 있습니다.)

이메일을 열었더니, '네 물건 주문에 관한 내용이다, 어쩌고... 저쩌고...' 하는데 왠지 이메일의 형식이 이전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첨부파일은 pdf였습니다. '뭐지?'라는 생각이 들며 파일을 열려는 순간, 얼마 전에 보았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의 이야기가 생각났습니다. 친한 동생에게 온 이메일에 첨부된 doc 파일을 열었다가, 회사 서버에 저장된 정보가 유출된 이야기 말입니다. 저도 드라마를 보면서 배운 것이, doc 파일을 이용해서도 해킹을 하는구나 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제게 배달된 pdf 파일을 열지 않고, 구글에 검색을 해보니 pdf 파일도 해킹에 사용될 수 있다는 내용이 검색됩니다. 다시 이메일을 보니, 여러 면에서 정상적이지 않은 부분이 감지되어, 그냥 삭제를 했습니다. 그리고 학과의 매니저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내가 이런저런 일이 있었는데, 학과에 이런 내용을 공유해서 피해자가 없게 하면 어떨까?' 예, 맞습니다. 저는 '오지라퍼'입니다. 이런 일은 그냥 제 선에서 끝내고 정리했어야 했는데, 오지라퍼인 저는 굳이 학과에 이를 통보한 것입니다. 매니저에게 바로 연락이 왔습니다. '학과와 공유하고 싶은 이유가 뭔가?' 정말 사무적인 질문입니다. 그리고 이어지기를, '이런 일은 관련 부서에 신고를 하기 바란다'며 링크를 보내줬습니다.

저는 깨달았습니다. 제가 너무 옛날 방식을 가지고 아직도 가끔은 현재에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말입니다. 바로 태세 전환을 했습니다. '나는 다른 이들이 걱정돼서 네게 제안을 한 건데, 듣고 보니 네가 한 말이 맞다. 동의한다. 네가 말한 대로 절차를 밟아서 관련 부서에 신고하도록 할게.' 이렇게 답장을 보내니, 다시 연락이 옵니다. '네가 이 내용을 학과의 구성원들과 공유하려는 이유가 뭐냐?' 저는 학과 매니저와 관계가 나쁘지 않고, 평소에도 제가 부탁한 일을 잘 처리해 줍니다. 물론 저도 불필요한 일은 말하지 않습니다. 그냥 업무적 관계입니다. 그럼에도 제가 보낸 이메일에 대해서 궁금했는지, 아니면 자신을 귀찮게 했다고 생각을 했는지는 모르지만, 또 이유를 물어옵니다. 저도 적절하게 대응합니다. 'Thank you, 아무개. 항상 너의 도움에 고마워.' 상황은 이렇게 일단락됐습니다.

저는 애매한 세대에 속해 있었습니다. 제 선배들은 조국의 민주화를 위해서 데모를 했고, 제 후배들은 등록금 문제와 같은 학내문제로 데모를 했습니다. 그 중간에 낀 우리 세대는 그냥 어정쩡했습니다. (물론 우리 중에도 소신을 가지고 사시는 많은 분들이 있음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제 의도는 그냥 조금 애매했다는 이야기입니다.) 너무 집단적이지도 않고, 너무 개인적이지도 않습니다. 이때, 갑자기 내 안에서 누군가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습니다. '나만 안 당했으면 됐지, 뭐하러 학과 사무실에 연락을 하냐? 괜히 귀찮게 말이야.' 또 다른 소리도 들립니다. '비록 이렇게 끝났지만, 괜찮아, 할 일을 한 거야. 좋은 의도였어.' (그냥 그렇다는 것이지, 제가 정신분열, 착란증, 뭐, 이런 것은 아닙니다.)

외국에서 오랫동안 일을 하고 있지만, 여전히 혼란스러운 것이, 어렸을 때 배웠던 집단적 가치관에서 개인주의로의 전환입니다. 연구실에서도 이래저래 이 사람, 저 사람을 돕다 보면, 다들 고마워하는 것 같지만, 정작 그들은 남을 돕지 않습니다. 뭐 하나 부탁을 하면 제대로 일처리가 되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라도 터지면, 책임을 지려는 사람이 없습니다. 다들 자신의 무고함을 주장하기에 바쁩니다. 저도 이전에 이상한 일들에 휘말려 본 경험이 있어서, 어떻게 대응하는지 배우게 되었고, 그 프로토콜을 따라 살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어린 시절에 세뇌된(?) 집단주의적 성향 때문인지, 여전히 나 보다는 조직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래 봐야 내게 돌아오는 보상은 아무것도 없는데 말입니다.
 

세상을 탓하지 말고, 유연한 자세가 필요하다


이제는 시대가 변했습니다. 이전의 방식대로 사는 사람은 코모도왕도마뱀과 함께 멸종위기에 처했고, 모두들 새로운 시대의 질서를 따릅니다. 이것이 옳으냐 아니냐에 대한 생각도 해 봤지만, 현실은 현실입니다. 받아들이고 그 가운데서 살아야 할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그래서 유연한 사고를 해 보자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필요에 따라, 때로는 나보다 남을, 때로는 남보다 나를... 제가 도덕 시간에 배운 것과는 대치되는 내용이지만, 어떡하겠습니까? 세상을 탓하기보다는 그에 대해 유연하게 대처하는 게 더 중요하지 않을까요?

오늘도 부족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PS. 요즘 뉴스를 보니, 요즘 텍사스에서 휴지나 돈을 만지다가 마비 증상이 오는 사람들이 많다고 하네요. 납치 및 인신매매가 의심된다고 하는데, 이제부터는 건물에 떨어진 휴지도 그만 주워야겠습니다. 정말 세상이 많이 변했네요.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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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MK  |  09.13 17:39     
올려주시는 글 늘 재미나게 읽고있습니다. 일부는 매우 공감도 하고요.^^
글머리에 쓰신것과 같이 너무 깊이 생각지는 않고, 가볍게 읽고 있습니다.

오늘은 공감이 더 많이 되네요.
저도 학교에서 연구소로 오면서 오늘 주제와 같이 집단의 가치관과 개인의 가치관에서
매우 혼란스럽고, 적응하기가 어려웠었거든요.
처음엔 스스로가 너무 혼란스러워서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을 많이 했었는데,
말씀하신것과 같이 현실이 변한건데 제가 적응을 못하고 있는것 같더라고요.

그래서 결국은 집단의 가치관에서 일부를 내려놓고, 저도 때때로 그때 상황에 맞게 (혹은 사람에 맞게)
개인의 가치관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적응을 해나가고 있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고 있는게 맞겠네요..^^)
아무튼 오늘쓰신 글에 또한번 공감하고, 덕분에 복잡한 머리 한번 식히고 다시 제자리로 갑니다.
감사합니다.
hbond  |  09.13 18:03     
MK 님, 댓글에 감사를 드립니다. 예전 글에서도 MK님의 댓글을 본 것 같은데, 맞죠? ㅎㅎㅎ.
나를 생각하는 개인주의와 우리를 생각하는 집단주의, 매우 다른 것 같지만 둘 다 추구하는 목표는 행복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개인의 행복과 우리의 행복 말이죠. 결국 우리의 행복은 개인의 행복을 포함하기에 결론적으로는 개인의 행복에 있는 것이죠. 저는 MK님도 행복을 추구할 기본적 권리를 행사하시는게 맞다고 봅니다 그것이 개인주의던 집단주의던 같에 말이죠. 그러니 너무 고민하지 마시고, 나를 추구하는 사람에겐, 나로서 대하시고, 우리를 추구하는 사람에게, 우리로 함께 하시면 될 것 같아요. 항상 행복하세요, MK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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