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험실 이야기] 나는 실험실의 꼰대인가?
종합 / Bio통신원
hbond (2022-07-13)

나는 실험실의 꼰대인가?


저의 글은 정확한 지식이나 권고를 드리기 위해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제가 연구실에서 경험한 것을 여러분과 글로 나누고, 일에 매진하시는 우리 연구자들에게 잠깐의 피식~하는 웃음 혹은 잠깐의 생각, 그 이상은 바라지 않습니다. 너무 심각하게 생각하시면(3초 이상) 안 그래도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여러분의 뇌세포가 안 좋아지니, 가볍게 읽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예전에 인터넷에서 돌던 이야기입니다.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 가설 1. 이 세상 어디든, 어느 조직이든 일정량의 ‘또라이’는 존재한다. 가설 2. 그런 또라이를 피해서 직장을 옮기거나 이사를 가더라도 그곳에서 새로운 또라이를 만나게 된다. 가설 3. 만일 내가 속한 조직에서 또라이 수가 현저히 적다 하더라도, 그 소수는 또라이 지수가 높으므로 또라이 총량에는 차이가 없다. 가설 4. 내가 속한 집단에 진정으로 또라이가 없다고 확신이 든다면, 그건 바로 당신이 또라이라는 증거다.]* 다들 한 번씩은 들어 보셨을 이야기입니다. 저는 가끔씩 이 이야기를 되새겨 봅니다. 그리고 특히 "가설 4"를 주목하여 생각합니다. '혹시라도 제가 또라이 짓을 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반문을 해 봅니다.

다들 그런 것인지, 아니면 제가, 소위 말하는 꼰대끼가 있어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대학원에 들어오는 친구들이 일하는 모습을 보면 이전과는 많이 달라졌다는 생각을 합니다. 좋게 말하면 독립적이고, 자신감이 있어 보입니다. 제가 처음 대학원에 들어갔던 때는, 왠지 모르게 위축되고, 많이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었던 것 같습니다. 선배들에게 조금은 귀찮을 정도로 하나하나 물어보고, 그렇게 배운 내용이 맞는지 틀리는지 문헌을 통해서 다시 확인하는 작업의 반복이었습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친구들은 질문을 하지 않습니다. 모르는 내용이 없는 것 같습니다. 매년마다 다양한 국적의 친구들이 연구실에 들어오는데 거의 비슷한 양상입니다. 그렇게 독립적으로(?) 일한 결과들을 보면 난감할 때가 많습니다. 이 외에도, 학부 연구원들이 가끔씩 대학원생들에게 실험과 관련된 질문을 합니다. 연구실에 오는 학부 연구생들은 의대나 약대, 치대를 목표로 하기 때문에 생각보다 똑똑한 친구들이 많습니다. 그리고 질문도 날카롭습니다. 그런데 그에 대한 대답들이 가끔은 너무 두루뭉술하여 옆에서 듣고 있는 제가 민망할 때가 있습니다.

효율성을 고려하면, 연구실에서 선배에게 처음 몇 달 동안 실험을 배우고, 관련된 이론도 공부하면서 빨리 익히고, 자신의 연구주제를 가지고 스스로 연구하면 될 것 같은데, 우리 교수님은 독립적인 깨우침을 중요시하는지 그냥 아이들이 스스로 깨닫도록 둡니다. 물론 탁월한 학생들도 있습니다. 이전에 있던 학생 하나는 학부를 졸업하고, 화학회사를 다니다가 뜻이 있어서 대학원에 들어왔는데, 정말 스스로 알아서 하는 스타일이었고, 모든 면에서 훌륭했습니다. 하지만 모든 학생들이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마도 방법적인, 문화적인 차이일 수 있겠지요. 세대차이라고 볼 수도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가끔씩 저에게 질문을 하는 친구들에겐 상세하게 알려주고, 보여주었습니다. 실험이라는 것이 안다고 다 되는 것이 아니고, 반복적인 훈련이 필요한 일이라 실질적으로 어떻게 하는 것인지를 알려주고, 보여줍니다. 그런데 이것도 제 오지랖인 듯합니다. 제 생각엔 이것이 효과적이고, 또한 배려라고 생각했는데, 그냥 실험하는 방법만 알려주는 것을 원하는 것 같아서, 그 뒤로는 질문을 받으면 실험방법이 적힌 문서를 보내줍니다. 지난달 초에, 세포 배양 배지와 Fetal Bovine Serum(FBS)가 소진되어서 생화학 실험실의 연구가 멈췄습니다. 하필이면 회계연도 끝자락에 걸려서 새로 주문도 못하고, 아무것도 못하는 채로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이유를 알아보니, 그 많던 FBS와 세포배양 배지는 학생들의 연습을 위해서 소진된 것입니다. 얼마 전 다른 학교에서 포닥을 하는 분을 만났을 때도 비슷한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젊은 친구들의 연구 방법이 많이 다르다는 말을 합니다.

역지사지라는 말을 좋아합니다. 아마도 제가 일을 배우던 시기에 저를 지도하시던 선배님들도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오늘도 조용히 도와 달라는 학생들에겐 최선을 다해서 도움을 줍니다. 그리고 청소하라, 뭐해라 하는 잔소리는 집어치우고, 그냥 연구실 바닥에 떨어진 휴지를 조용히 줍고 있습니다. 최선을 다해서 꼰대력의 상승을 억제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원 출처 미상. "또라이 총량 불변의 법칙." 문화일보. 2019년 3월 12일. http://www.munhwa.com/news/view.html?no=2019031201032636000001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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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5)
안녕난세포야  |  2022.07.13 14:56     
후배가 선배에게 물어보지않고 스스로 연습... 6well plate 통째로 ICC를 하는데, 들어가는 ab양을 생각해보면 아득해짐.. 연습한번에 항체 한바이알 다씀..이러고 계속 항체 주문하고있던 것. 실험실 처음들어오면 사실 선배에게 거의 모든걸 의존하지 않으면 산으로 갈 것임. 마치 자연계에 엔트로피가 자연히 증가하듯이...
hbond  |  2022.07.13 21:32     
"안녕난세포야"님, 댓글에 감사드립니다. 한국은 어떨까 궁금했는데.. 어쩌면 젊은 세대의 강한 독립심이 반영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즐거운 연구, 연구실 생활되세요. :)
A-mar  |  2022.07.14 15:28     
요즘 아이들도 어떻게 보면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보여주기 식 스펙 맞추기,
겸허한 태도가 결여된 사회의 희생양이 아닐까요..
이과남  |  2022.07.18 12:41     
그래도 소통을 원하는 쪽이 소통의 방식을 바꿔야 하는거 아닌가요? 나는 정말 답답한게 뭘 물어보러와서는 "아닌데요? 제가 맞는데요?" 이러는데 몹시 당황스러워요. 자기가 맞으면 결과도 맞게 나와야 하는거 아닌가? ;;;; 그럴꺼면 물어보질 말던가... 저도 한두번 당하는게 아니다보니 점점 무관심하고 나몰라라 하는 상사가 되어가고 있어요. 나도 공부할땐 정답기도 하고 싸우기도 했지만 서운한 적은 있었어도, 소통이 어렵다는 생각은 안해봤거든요. 그냥 너네들도 나 꼰대라고 욕할꺼면 나한테 말시키지 마... 라고 말해주고(아니 말했다ㅋ)싶어요.
hbond  |  2022.09.14 00:44     
너무 늦었지만, A-mar님, 이과남의 소중한 의견에 감사합니다.
저는 꼰대력이 상승하려 할 때마다, 얼마전에 드라마에서 봤던 주문을 외웁니다.

"워~워~" 마음속으로 말입니다. 모두 힘내세요, 화이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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