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의 덕목_정리 정돈] 고기도 줄 맞춰 굽습니다.
종합 / Bio통신원
세균맨 (2022-06-24)

고기도 줄 맞춰 굽습니다.


소모품 박스는 그때그때 해체한다.
저의 첫 직장에 유난히 꼼꼼한 선배 연구원이 몇 분 계셨습니다. 
그분들 덕에 실험실 정리가 매우 잘 되어있어 실험 환경이 쾌적했지요. 
입사를 하고 보니 대학원 때와는 비교가 안 될 만큼 실험실 정리가 잘 돼 있는 거예요. 가장 놀랐던 것은 모든 실험 용품이 박스에 들어있지 않고 선반에 착착 쌓여있는 모습이었습니다. 패트리 디쉬나 코니컬 튜브같은 소모품은 박스에 보관하면서 하나씩 꺼내 쓰는 것이 제 상식이었는데 그 적극적인 물건 정리 방법에 적잖이 놀랐던 기억이 납니다. 
실험 소모품이 납품되면 받는 즉시 박스를 해체해서 각 소모품의 자리에 비치하는 일이 일상이었습니다. 그 덕에 바닥에 박스가 쌓여있는 모습은 볼 수가 없었고, 마구잡이로 집어넣은 서랍은 한 개도 없었습니다. 

저는 털털한 편이고, 청소에 소질이 없어 정리를 잘하지 못합니다. 
처음에는 박스를 정리하는 일이 시간 낭비 같았어요. 어차피 꺼내 쓸 것인데 박스를 깨끗하게 쌓아놓으면 되지, 그걸 미리 다 꺼내서 쌓는데 시간을 소비할 필요가 있나 싶었거든요. 
그런데 적응하고 보니 꽤 가치 있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박스가 차지하는 공간이 줄어들어 수납공간이 늘어나는 것 만으로도 환경이 쾌적하게 관리가 되더라고요. 물건 찾느라 헤매지도 않고, 필요할 때 한눈에 보이는 소모품을 바로바로 꺼내는 것도 청량한 기분이었습니다. 

정리 잘 하는 사람은 일처리도 잘 하는 법
두 번째 직장에서 만난 제 사수도 정확하기로 사내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울 사람이었습니다.
자그마한 체구의 여성분인데 회식을 가서 고기를 구워도 줄을 맞춰 구워야 직성이 풀린다는 분이었어요. 그러니 실험실 정리는 오죽했겠습니까. 
금요일 오후에는 전 팀원이 모두 실험실 청소를 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 시간에 제 사수와 저는 걸레를 들고 실험대 위는 물론 냉장고와 인큐베이터 윗부분에 쌓인 먼지까지 모두 닦아내는 것이 일상이었습니다. 
이분 역시 실험실 바닥에 박스가 쌓여있는 모습은 용납하지 않았고, 시간이 날 때면 늘 서랍정리하는 게 일이었어요. 그걸 저한테 시키는 일도 거의 없었습니다. 솔선수범의 전형적인 좋은 예라고 할까요? 덕분에 정리란 모르고 살았던 저도 테이블 위를 정리하는 것이 습관화되었습니다.

정리를 잘하는 사람의 좋은 점은 외관을 청결하게 유지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일상생활과 일처리도 분명합니다. 
제 사수는 실험실에서 사용하는 물품들의 소재 특성과 사용처도 정확히 알고 있었습니다. 
“이 스크류튜브 캡 내부는 테프론으로 된 걸 써요. 다른 소재도 여러 개 있는데 밀착이 잘되지 않고 변형되니까 이걸로 주문합시다.”
실험실 생활을 꽤 해봤지만 상비 용품들의 소재 명칭까지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던 사람은 없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성향은 연구원에게 꽤 유리한 특징입니다. 본인이 하는 실험 과정이 단계별로 어떤 의미가 있고, 왜 하는지를 분명히 파악하죠. 보통 목적과 방법은 알고 있지만 프로토콜에 따라 다음 단계의 실험을 진행하기 마련인데 그분은 실험과 업무를 알려주면서 매번 왜 이것을 하는지 세세히 설명을 해주곤 했습니다. 
저도 나름대로 실험실 생활을 몇 년 하고 들어간 회사이기 때문에 기본 실험은 손에 익은 편이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몇 년간 매일 반복했던 그 일들을 왜 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지 않고 습관처럼 하는 경우가 많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성향도 직업에 맞게 조금씩은 변합니다. 
조직에는 다양한 사람들이 함께 생활하죠. 털털함이 지나쳐서 일을 그르칠 만큼 부주의한 사람도 있고, 원래 성격이 꼼꼼하고 생각이 깊어 실수와 착오가 거의 없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최근 MBTI가 유행인데요. 입사 직후 처음 했던 MBTI 테스트에서 저는 F 성향이 높은 편이었습니다. 업무 중심의 사고적 판단(Thinking) 보다 인간관계 중심의 감정적 판단(Feeling) 경향이 더 높았던 거죠.
그런데 십여 년 후에 두어 차례 다시 해봤을 때는 항상 T 성향이 강하다는 결과를 받았습니다. 
아무래도 직장 생활을 오래 하면서 성향도 직업에 맞게 변화한 것이 아닐까요?
어쩌면 저의 현재 상태보다 제가 도달하고 싶은 모습이 그런 테스트의 결과로 나오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틈만 나면 웹툰을 챙겨보고,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다 타는 직장 밖에서의 저는 여전히 F 성향이 우세한 것 같지만, 업무적으로는 논리적이면서 냉철하고 싶은 제 바람 때문에 말입니다. 

타고난 성향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아예 불가능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하지만 어려서부터 방 정리를 제대로 하지 않는다고 엄마한테 매일 잔소리를 듣고, 책상 위에 산처럼 쌓인 책들 사이로 필요한 책을 젠가 게임하듯이 빼내면서도 절대 정리 따위는 하지 않던 저도, 정리의 달인 연구원 선배들을 만나면서 정리 방법을 조금이나마 터득하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깔끔한 성격이 되지는 못했지만, 실험실에서 정리와 청결은 업무 효율뿐 아니라 안전면에서도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기 때문에 실천하려고 노력합니다.

타고난 성향과 하는 일이 맞지 않는 것은 곤혹스러운 일이나, 자신이 하는 일을 효율적으로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변화하는 것도 긍정적인 성장의 일부입니다. 
자신을 바꾸지 않아도 좋은 면을 차곡차곡 덧쌓는 것은 나를 늘리는 가치 있는 일이니까요. 
그것만으로도 일상은 변화합니다.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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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카카오회원 작성글 se***  |  06.24 13:50     
한국인들은 본인들의 단점을 장점으로 착각하면서 자부심을 가지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네이버회원 작성글 co****  |  07.05 09:24     
한국인들은 본인들의 장점을 단점으로 착각하면서 부러워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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