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원의 덕목_평정심] 뿌리 깊은 나무 같던 실험실의 그 언니
종합 / Bio통신원
세균맨 (2022-0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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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픽사베이]


2002년 대한민국은 월드컵의 열기로 활활 불타고 있었습니다. 
승전보가 이어지는 내내 전 국민이 감동에서 헤어 나오지 못했죠. 경기에 승리한 날은 버스를 운행하는 기사님들까지도 ‘대~한민국’ 구호의 음률에 맞춰 클락션을 울려주실 만큼 도시 전체가 들떴으니 말입니다.
그해 저는 대학원 석사 1년 차였습니다. 월드컵의 기운이 실험실이라고 비껴가진 않았겠죠.  한 게임 한 게임 이길 때마다 흥분이 더해져 나중에는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다들 들떠있었지요. 평소에는 말도 잘 안 하던 박사과정 선배들도 축구를 좀 져야 실험을 할 텐데 계속 이겨대니 아무것도 못하겠다며 평소답지 않은 인간미를 물씬 풍겼습니다.

몇 개 경기는 실험실 건물 앞 잔디밭에 대형 스크린을 설치해 놓고, 우리과 모든 대학원생들이 다 같이 모여서 보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이 맥주도 몇 박스 지원해 주셔서 당당하게 낮술을 먹으며 관람하는 꿀맛 같은 날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축구에 관심 없던 사람들까지 모니터 앞으로, 한강 고수부지로 끌어냈던 월드컵의 기운이 흔들어놓지 못했던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저희 실험실 방장 선배였습니다. 

그분은 태초부터 실험하려고 태어난 사람이었어요. 
입학 전, 학교에 서류를 제출하러 갔던 날, 그 선배를 처음 봤습니다. 
교수님을 뵙고 나서 같은 방 식구들에게도 인사를 하기 위해 실험실에 잠시 들렀었죠. 다들 1년 차가 들어왔다고 다가와서 이런저런 질문들을 하는데 그 선배만 목례를 간단히 하고 자기가 하던 일을 계속하고 있었습니다. 긴 머리에 털모자를 쓴 자그마한 몸집의 여자분이었는데 뭔가에 몰두하느라 신입생들과 인사할 정신이 없어 보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습이 서운하지 않고 참 멋지다고 생각했습니다. 

입학을 하고 보니 아니나 다를까 그분은 실험광이라고 할만한 사람이었습니다. 
술도 잘 마시고 후배들을 맛집에도 데려가 주고 놀기도 잘하는 선배였지만 실험에 한번 빠지면 본인이 생각한 일정을 마칠 때까지 꼼짝도 안 하는 집중의 달인이었습니다. 
 

2002년 6월 10일 실험 일기
미국과의 경기를 대형강의실에서 다 같이 봤다. 
맥주를 마시며 강의실이 떠나가라 응원을 했지만 결국 1대 1로 비겨버렸다.
경기가 끝난 후에도 안타까움이 가시질 않았다. 손에 땀을 쥐던 장면들을 되뇌느라 자리를 뜰 수가 없어 수다가 끝도 없이 이어졌다.
삼삼오오 각자의 실험실로 돌아갈 때도 복도가 왁자지껄했다. 나 역시 넣지 못한 골을 곱씹으며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떠들썩하게 실험실 문을 열고 들어서자 방장 선배가 고요히 책상에 앉아서 노트 정리를 하고 있었다. 
“와.. 언니 경기 안 봤어요?”
“응, 난 축구 몰라. 면담 들어가자” 
그렇지. 일주일에 한 번 있는 교수님과의 면담일이다. 경기 관람을 바로 마친 터라 면담을 건너뛸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는데 오산이었다. 월드컵으로 세상이 멈춰버린 것 같은데 방장 언니의 시계는 돌고 있었다. 
언니가 석사 때 썼던 논문을 토대로 나도 석사 논문을 준비하는 중이어서 언니와 나는 교수님 면담 날짜가 같다.
“아, 네네.”
월드컵에 정신을 놓고 있던 나는 허겁지겁 실험 노트를 챙겨 들고 언니를 따라 교수님 방에 들어갔다.

“선생님, 면담 왔습니다.”
“어... 그래 그래 앉아.”
교수님도 강의실에서 같이 경기를 보고 방금 방으로 들어오신 터였다.
테이블에 앉아 면담이 시작됐고 언니가 먼저 주간 실험 보고를 했다. 그때, 자료를 물끄러미 보시던 교수님이 툭 한마디 던지며 웃으셨습니다.

“면담은 무슨 면담이냐. 허허” 
교수님도 월드컵의 흥분이 아직 가라앉지 않으셨던 것이다. 더구나 게임이 무승부로 끝나버렸으니 아직 경기 장면이 머릿속에 왔다 갔다 하고 계시겠지. 교수님도 사람이니까. 
교수님 말씀에 한바탕 웃음이 터졌다. ‘그럼 면담을 그만하는 건가?’ 반짝 희망을 가졌던 내 생각이 무색하게, 조용히 미소를 띠우며 언니는 다시 실험 보고를 이어갔다.


당시에는 그분을 이해하기 좀 힘들었어요. 인생의 즐거움을 너무 놓치고 사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 한 기막힌 축제 기간의 희열을 느끼지 못했던 선배가 안타깝기도 했고요. 
돌이켜보면 그분은 아마도 자신이 진행하는 실험의 과정을 월드컵 한일전만큼이나 흥미진진하게 느끼던 사람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이제는 좀 듭니다.

들끓는 흥분의 도가니 속에서도 본인의 일정을 지키던 그 선배는 꾸준히 좋은 연구 성과를 냈고 지금은 교수님이 되셨습니다. 아직도 연구에 매진하는 모습은 변함없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학자의 길을 걷지 않는다면 누가 학자가 되겠습니까, 당연한 결과였죠. 

오랜 시간 집중하여 훌륭한 연구 결과를 내놓는 분들을 보면 평정심이 남다른 것 같습니다. 그런 분들이 세상에 한 축을 받치고 있으니 발명과 발견이 이어지고 인류도 한 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거겠죠.

그렇다고 잘 흥분하는 저와 같은 사람들의 삶이 그보다 낮은 가치를 지니는 것은 아니죠. 그때 전국에서 같이 뛰었던 12번째 전사들 덕분에 월드컵도 4강까지 올라갔고, 국민들이 하나로 뭉쳐지는 경험도 해본 것 아니겠습니까. 

그래도 실험일을 밥벌이로 삼고 있으니, 조금 더 꼼꼼하려고 노력하고, 일의 흐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마음을 다스리면서 성향도 조금 침착해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흥분을 잘하는 저는 그들을 존경하며 지금 제 모습도 긍정하며 그렇게 살고 싶습니다. 각자 자기 몫의 삶이 있는 것이니까요.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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