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험실 이야기] 빌리와 함께 일하기
종합 / Bio통신원
hbond (2022-02-04)

빌리와 함께 일하기


미국에는 대학생들에게 연구 기회를 제공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는 NSF에서 시행하는 Research Experiences for Undergraduates(REU)와 같은 것으로, 여름방학에 일하는 동안 여행경비와 생활비를 지원해 줍니다.

지난여름에 제가 일하는 연구실에도 이런저런 프로그램으로 몇 명의 대학생들이 와서 일을 했는데, 저는 제가 일하는 학교에서 후원하는 ‘암연구 특성화 프로그램’에 뽑힌 학생과 일을 하게 되었습니다. 생각보다 높은 스펙에 놀랐습니다. 대학교 입학 전부터 4년간의 등록금보다 더 많은 장학금을 받았고, 여러 학교에서 입학 허가서를 받아서 자신이 원하는 학교를 선택한 친구였습니다. 제가 일하는 학교의 학생은 아니었지만, 추천을 받아서 프로그램에 선택되었다고 했습니다. 지도교수님은 저에게 빌리(가명)를 배정해 주시면서 연구 주제도 함께 주었습니다.

사실 저는 ‘대학생이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을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게다가 연구주제가 생각보다 어려운 것이어서 더 걱정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논문을 출판하기보다는 그냥 연구실을 경험하는데 의의를 두고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함께 일을 해보니 요즘 아이들 같지 않게 마음이 착하고, 일도 잘 따라 했습니다. 어느덧 짧은 여름 시간은 끝이 났고, 빌리는 자신의 학교로 복귀를 했습니다.

가을 학기가 시작되었고, 빌리는 저와 지도교수에게 계속 연락하면서 연구를 계속하길 원했습니다. 빌리도 의대를 진학하기 희망하는 친구인데, 그래서 연구경력과 연구결과물이 필요했습니다. (매년마다 이런 친구들이 연구실에 오고, 대부분은 다 원하는 의대/약대에 진학을 했습니다.) 그래서 올해 1월부터 다시 연구를 하기로 했고, 이번에는 제가 하는 실험에서 스핀오프로 주제를 설정해서 저와 같이 다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하는 일이 많다 보니까, 빌리가 점점 거추장스럽게 여겨지는 것입니다. 다단계 화학반응을 해야 해서, 각 단계별 화학반응을 설명하고, 필요한 시약을 주면서 실험에 필요한 시약을 양을 계산하라고 했더니 이걸 못하는 것입니다. 일반화학을 제대로 배웠다면 분명히 할 수 있어야 하는데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하나 그려가며, 계산해 가면서 가르쳐 주었는데, 이번에는 밀리리터와 마이크로리터를 혼동하는 바람에 너무 시약을 많이 넣어서 준비한 시약을 버려야 했습니다. 그중 하나의 반응물은 5일 동안, 두 단계를 거쳐서 준비된 것이었습니다. 뭐,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이 되어서, 남은 반응물을 가지고 다시 실험을 준비하고 실험을 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일일이 떠먹이는 일을 하다 보니, 제 시간이 너무 많이 소비되는 것입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 생각해 보니, 솔직히 말해서, 제가 가르치는 방식 그대로 하면, 중학교 1학년생과 일을 해도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 대학생 연구원이 한 일은 약물의 무게를 측정해서 섞은 일 밖에 없었습니다. 다음 날, 출근해서 다른 대학생과 일하는 대학원생에게 물었습니다. ‘너는 대학생과 어떻게 일을 하냐?’고 물으니, 한 대학원이 말하길 자기가 일하는 학생은 너무 일을 잘하고 있어서 별로 가르칠 게 없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 대학생의 실험노트를 확인해 보니, 아주 훌륭합니다. 정말 놀랍습니다. 가끔 그 학생이 일하는 것을 보면, 정말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실험노트를 보니 놀라움 그 자체입니다. 조금 후에 교수님이 연구실을 돌면서 물어봅니다. “What’s up?”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물어가면서 현재 진행되는 프로젝트들을 확인합니다. 저도 제가 하는 일들을 보고하고 논의를 했고, 함께 일하는 빌리에 대해서 이야기했습니다. “이차저차 해서 시간이 많이 소비됩니다.” 교수님도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시지만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도 빌리는 정해진 시간에 도착을 했습니다. 우리는 함께 화학 합성을 하고 있습니다. 문득 돌이켜보니, 제가 걸어온 길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그분들도 나처럼 귀한 시간을 내어 저를 가르쳐 주었고, 지금까지 제가 일을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주 짧은 시간이었지만, 이런 생각이 드니, ‘뭐, 할 만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오늘도 무사히, 그저 큰 사고만 치지 말아라.’라고 마음으로 기원하면서 오늘도 열심히 빌리를 가르치며 같이 일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어떠세요? 혹시 초심자와 같은, 일을 잘 모르는 누군가와 일하면서 조금은 마음에 불편함을 느낀 적이 없으신가요? 그렇더라도 조금만 참아주고, 이해하면, 누가 알겠습니까? 여러분과 함께 한 그 학생이 놀라운 일을 하는 사람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요?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이미 여러분은 세상에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이 되어 있는 것이 아닐까요? 여러분은 누군가의 삶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만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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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postdocbio  |  02.05 02:02     
저도 김종현님 처럼 몇몇 학부생들과 실험을 진행해 본경험이 있어서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저같은 경우는 연구의 big picture를 먼저 설명하고, 학생이 해야 할 부분이 어디인지 알려줍니다.
그리고, 실험을 알려줄 경우 기본적인 이론을 먼저 설명해 줍니다.
예를 들면 PCR을 할경우 각각의 reagents들이 어떤 일을 하는가에 대해 이해를 시켜 줍니다.
그 다음 실험 기기들의 작동 방법에 대해 최대한 자세히 알려줍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실험은 노트에 최대한 자세하게 작성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꽤 괜찮게 따라 왔습니다.

다만 몇몇 남자 학생들은 계속해서 실수를 하는데...
이럴때는 금융치료(?)가 최고입니다.
이거 kit 이 얼마고, 니가 실수로 $$$ 날려먹었어...
그리고 실험하는 시간이 x 시간인데... part-time job을 하면 얼마를 더 버린셈이야...
이런식으로 말해주면 조금 나아지더군요
hbond  |  02.06 02:15     
postdocbio님의 조언에 감사합니다. 저도 말씀하신 것처럼 한 번 해봐야겠습니다.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김종현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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