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보셨습니까? 콩 심은 데 콩 나고, 팥 심은 데 팥 난다. 논문을 이야기 하는데, 왜 콩과 팥이냐고요? 논문을 대량으로 출판하는 연구자들을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그분들이 어느 연구실에서 훈련을 받았는지 찾아보시면 거의 백발백중 논문이 대량으로 쏟아지는 연구실 출신일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혹시 그분들은 논문을 왕창 쓰는 법을 알고 있기 때문에 그런 건 아닐까요? 사실 저도 논문이 대량으로 출판되는 연구실을 경험해 본 적이 없어서 늘 이것이 궁금했습니다. 그리고 정말이지 이런 주제는 언제나 갑론을박, 말이 많은 주제이기 때문에 별로 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연구를 한다고 하면, 절대로 피할 수 없는 주제이기 때문에 조금만 이야기해 보려고 합니다.
석사 학생으로 연구를 할 때, 제가 했던 일은, 1. 위에서 원하는 데이터를 만들어서 제공한다, 2. 나의 논문은 직접 써야 한다고 해서 논문 쓰기를 흉내 내 본다, 이 정도였습니다. 나름대로 있는 실력, 없는 실력을 짜내어 논문을 써서 박사님께 보여드렸더니, 너무 놀라셨던 박사님이 기억납니다. 놀라울 정도로 형편없는 저의 논문은 빨간펜으로 새빨갛게 단장을 하고 돌아왔습니다. 열심히 수정을 했습니다. 아무튼, 그렇게 박사님의 놀라운 마법으로 저의 졸작은 점점 논문으로 변신했고 마침내 출판되었습니다. 저의 박사과정의 지도 교수님은 데이터를 드리면 혼자서 열심히 논문을 쓰기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논문을 다 쓰시면, '한 번 읽어보고, 수정해서 보내줘.'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그렇게 연구에 진전은 있었으나 논문 쓰기에 진전이 없는 박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포닥이 된 후에 만나는 교수님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포닥 지도 교수님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분이었는데, 나름대로의 포맷이 있어서 그 포맷에 데이터를 대입하듯이 쓰셨습니다. 그러다가 지금의 교수님과 같이 일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의 교수님은 연구의 결과를 논문으로 발표해서 여러 연구자들과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분입니다. 모든 연구에는 시간과 돈이라는 비용이 들기 때문에 그에 맞는 결과가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언젠가 교수님이 이와 관련된 본인의 경험을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내가 포닥으로 어느 연구실에 들어갔는데, 거기에 계속해서 논문을 내는 사람이 있었어. 그것도 아주 좋은 저널에 연속적으로 말이야. 그래서 물어봤지. 비법이 뭐냐? 그랬더니 자기만의 일정한 폼을 만들어서 계속 데이터를 만들고, 무조건 쓴다는 거야. 물론 유명한 학교 이름과 교수님의 명성은 보너스지.' 제가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 솔직히 약간의 거부감이 느껴졌습니다. 마치 순수한 학문의 결정체인 논문을 공장에서 물건을 찍어내듯 한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어쨌거나 여기까지 봤을 때, 논문이 많고 적고는 학생의 의지가 아니라 지도 교수님의 마인드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서 다들 말하길, 논문이 잘 나오는 연구실로 가라고 하죠. 이미 그런 연구실에 계시다면 전혀 걱정이 없으시겠지만, 그렇지 않은 연구실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여기 제가 경험한 몇 가지를 나누기 원합니다. 일단은 논문을 내겠다는 의지가 중요합니다. 마치 회사에서 주별로, 달별로, 분기별로 목표를 설정해서 그 목표에 도달하려고 노력하듯이 구체적인 계획을 세워서, 특정 시점에는 논문을 내겠다는 마음가짐이 필요합니다. 일단 계획이 세워지만, 무조건 그 계획을 지켜야 합니다. 핑계를 대려면 끝이 없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계획대로 밀고 나갑니다. 그리고 실험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면 안 됩니다. 아니 실험이 쉽다고 느껴질 정도로 노력을 하셔야 됩니다.
연구실에 보면, 사람들 중에 유독 어렵지 않게 일을 하시는 분들이 계십니다. 그런 수준이 되도록 계속 반복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자, 이렇게 데이터를 차곡차곡 모으면서 Supplementary information(SI)을 만듭니다. 논문의 이야기 순서와 동일하게 데이터를 배치하면서 완성하시면 됩니다. 이 작업이 끝나면, 이젠 SI에 나온 데이터의 실험 방법, 결과, 논의를 적습니다. 실험 방법은 구체적으로 적을 수록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과는 관찰된 내용을 적으면 되고, 논의 부분에서는 과학적 의미가 있는 부분들을 다루게 됩니다. 이 세상에 없는, 전혀 새로운 형식을 만들려고 하지 말고, 좋은 논문의 형식을 따라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방식으로 이야기를 꾸며 봅니다.
논문을 계속 읽어보시면 아시겠지만 논문에는 일정한 양식이 있습니다. 저 같은 경우, 화합물을 합성하기 때문에 먼저 합성에 대한 이야기와 그 구조를 어떻게 밝혔는지에 대한 실험 데이터, 그리고 화합물이 약물로 평가될 수 있는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실험들을 우선으로 합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세포 독성 실험을 합니다. 이것을 마치면 약물의 작용 메커니즘을 설명할 수 있는 실험들을 설계해서 진행합니다. 이런 식의 공식이 있습니다. 조금 더 임팩트를 주고 싶다 하시면 필요한 실험을 설계해서 추가합니다. 이런 경우, 미리 교수님과 논의해서 결정을 하면 좋습니다.
실험을 했다고 해서, 무조건 좋은 결과만 나오는 것은 아니죠. 노력은 우리의 몫이지만, 결과는 훌륭하게, 또는 그저 그렇게 나올 수도 있습니다. 절대로 염려하지 마세요. 좋은 결과의 논문은 임팩트 있는 저널로, 약하다 싶으면 그에 걸맞은 임팩트를 가진 저널로 보내겠다고 생각하면 됩니다. 일단은 무조건 논문을 내겠다는 생각을 잊으시면 안 됩니다. 또한 논문을 쓸 때는 최대한 객관적으로, 데이터를 기반으로, 사실만을 쓰도록 합니다. 조금은 딱딱해 보일 수도 있지만, 논문의 기능이 정보의 전달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전혀 이상할 일이 아닙니다.
오목을 둘 때, 보통 3-4수 앞을 본다고 하죠? 논문을 쓰실 때도 이게 필요합니다. 나중에 논문을 제출할 때, 나의 논문을 심사해 주면 좋겠다 하는 사람들의 명단을 내야 하는데, 보통 세 명 정도를 추천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언급될 분들의 논문은 가급적 나의 논문에 인용이 되는 게 바람직합니다. 보통은 서론에서 긍정적으로 언급해 주는 것이 좋습니다. 물론 내가 추천한다고 해서 그분들이 반드시 심사위원으로 선정되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이 과정을 염두에 두셔야 합니다.
이렇게 논문을 쓰셨으면, 가능한 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받아서, 필요한 부분을 수정하도록 합니다. 다 쓰셨다면, 이제 논문을 제출해야 합니다. 논문을 제출하려면 커버레터를 쓰셔야 합니다. 커버레터란 논문의 편집장에게 보내는 한 장짜리 편지인데, 아주 간결하게 잘 쓰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논문을 제출하면, 저널의 편집장은 가장 먼저 커버레터를 읽어보고, 제출된 논문을 심사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판단합니다. 유명한 저널일수록 이 부분에서 거절을 많이 당합니다. 제가 일하는 분야의 유명한 저널이 있는데, 보통 20% 정도의 논문만 이 과정을 통과한다고 합니다. 편집장은 하루에도 수많은 커버레터를 읽기 때문에, 이 과정을 통과하기 위해서는, 이 논문이 아주 유용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는 느낌을 주셔야 합니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