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실험실 이야기] 연구노트
종합 / Bio통신원
hbond (2021-05-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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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지난번에 썼던 [화학 합성]편을 다시 읽어 보니, '어려운 실험이 있었는데, 열심히 해서, 잘 했다'라는 정도의 느낌이 들었다. 내가 연재를 결심한 근본적 목적은, 브릭으로부터 받은 도움에 대한 고마운 마음을, 동시대를 살며 함께 연구하는, 특히 연구를 시작하거나 어려움이 있는 분들과 나누고자 하는 마음에서 시작한 것이다. 그래서 그때의 이야기를 좀 더 현실적으로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화학 합성]에서, 교수님이 요청했던 각각의 실험은 너무 생소했었고, 연구실 내에 아무도 경험이 없던 것이었다. 굳이 비유를 하자면, 한식집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을 주인이 불러서, '이봐, 스페인에 이런 요리가 있다고 하는데, 그걸 우리 한식에 접목해 보면 어떨까?'라고 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약간은 비현실적인 오더(주문)이 첫 번째 어려움이었고, 두 번째 어려움은, 무조건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 결과가 좋은 것이든, 좋지 않은 것이든, 논리적으로 설명이 가능한 수준의 결과가 바로 제출되지 않으면 연구실의 분위기가 확연히 달라진다.

보스의 성향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아마도 이 부분에서 공감을 느끼는 분들이 계실 것이라 생각한다. 이에 대해서 두 가지 방법이 있다. Yes와 No다. Yes라고 말하고, 그대로 지시를 따라서 하거나, 혹은 No라고 말하고, 연구실을 나가면 된다. 너무 극단적을 느껴질지도 모르겠다. 같이 일하던 학생 중 일부는 Yes와 No의 그 중간쯤에서 어정쩡한 포지션을 잡고 일을 했는데, 결국은 원하는 목표를 이루지 못하고 연구실을 떠났다. 지금 남아서 졸업을 준비하는 친구들은 모두 Yes를 선택한 사람들이다.

당시를 돌아보면, 나는 그 일들을 수행하기 위해서 일주일에 80-100시간 정도를 실험에 매달린 것 같다. (솔직히 나는 일시적으로 이렇게 일을 했지만, 항상 이런 식으로 일을 하시는 연구실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다들 건강하시길 바랍니다. 그 무엇도 건강보다 중요할 수는 없습니다.) 대략 2-3달 정도였는데, 나중에는 그만두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그만두려고 할 즈음에 결과들이 나오기 시작했고, 다시 일을 해야겠다고 마음을 바꾸어 일을 계속했다. 반복의 역사라고 한다. 아마도 지금 비슷한 상황에 계시는 분들이 계시다면, 나는 도전해 볼 것을 권한다. 최선을 다해보고, 더 이상은 어렵겠다고 생각이 들 때, 그때 그만두어도 좋지 않을까 싶다.

비단 연구실, 소위 말하는 ‘빡센’ 연구실만의 이야기가 아니다. 사회는 다양한 조직들의 집합이다. 그리고 그 조직들은 수장의 성향에 따라서 운영되는 방식이 다르긴 하지만, 크게 다르지 않다. 경쟁은 자본주의 사회의 요소이고, 학교도 예외가 아니다. 좋은 논문이 계속 출판되어야 연구비를 신청할 때 더 유리하게 된다. 그러니 교수, 연구원, 학생이 함께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다. 열심히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 열심은 인정받지 못한다. 너무 슬픈 이야기다. 하지만 엄연한 현실이다. 아무튼, 나는 그렇게 그 단계를 지났다. 그리고 나는 분명히 성장했다. 현재 내가 일하는 화학 합성에 있어서는 매우 능숙하게 반응을 설계하고 실행하는데, 그 때의 훈련이 많은 도움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연구노트]

연구노트의 중요성에 대해서는 한 번쯤은 들어보셨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리 연구실은 신생랩이었기 때문에 나는 잡다한 일에 관여를 할 수 밖에 없었는데, 그중의 하나는 바로 연구노트의 표준을 만드는 일이었다. 물리화학을 할 때부터 연구노트를 매우 꼼꼼하게 썼다. 자연스럽게 화학합성을 하면서, 또 생물학 실험을 하면서도 구체적이고 사실적인 서술을 유지했다.

얼마 전의 일이다. 우리 연구실의 2년 차 학생이 근사한 화합물을 합성했는데, 보스는 나보고 그와 비슷한 반응을 시도해 보라고 한다. 반응물의 종류는 달랐지만 같은 작용기를 가진 분자들을 이용해야 했기 때문에, 나는 학생에게 반응 조건을 물어보면서 실험을 설계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분명히 그 학생이 말한 대로 반응을 시도했는데 결과가 안 나온다. 2번을 반복했는데도 안 된다. 그래서 학생에게 부탁을 했다. 화학반응을 함께 해 보자고 했다. 그는 내가 보는 앞에서 실험을 했는데, 이전에 사용했던 실험노트를 펴더니 그때 사용했던 용량대로 반응물을 준비했다.

그래서 내가 왜 실험노트에 기록하지 않냐고 물으니, 이미 성공한 반응이라서 그럴 필요가 없다고 했다. 그대로 따라서 하면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그는 반응물의 질량을 측정해서 플라스크에 넣고 실험을 진행했다. (나는 같은 실험이라고 해도 모든 실험에 대한 기록을 남겨둔다.) 그가 측정한 질량을 기록하고 싶었지만, 그가 기분 나빠할까 봐 그냥 옆에서 지켜만 봤다. 하지만 이상했다. 반응물 A와 B의 비율이 1:2가 되어야 했는데, 그는 1:1.5의 양을 사용했다. 나도 이미 시도한 반응이었기에 반응물의 분자량을 알고 있었고, 옆에서 암산으로 비율을 계산하고 있었다. 그래서 실험을 마치고, 왜 1:2가 아닌, 1:1.5를 사용했냐고 물으니, 자기는 1:2의 비율로 반응을 진행했다고 한다. 조심스레 실험노트를 보자고 했다. 그는 잘못된 분자량을 사용하고 있었다. 분자량이 틀려서 내게 잘못된 정보를 주었던 것이다.  생성물의 수율도 틀렸다. 그는 70%말했지만, 재계산 결과 25%였다. 

연구노트는 바둑의 복기와 같다. 바둑인들이 복기를 통해서 자신의 장단점을 스스로 평가하고, 성장하는 것처럼, 연구노트를 쓰면서 실험의 전과정을 기억하고, 무엇이 문제였는지, 무엇 때문에 반응이 좋아졌는지를 찾아낼 수 있다. 앞에서 언급한 학생도 연구노트를 형식적으로 기록하는 것이 아닌 복기하듯이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기록을 했더라면 그런 실수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전히 연구노트를 꼼꼼히 작성하는 학생은 연구실에 많지 않다.

물론 시간이 더 걸리고, 귀찮을 수 있겠지만, 연구노트를 제대로 작성할 때 오는 이로운 점을 생각한다면 절대로 간과해서는 안 된다. 또한 연구노트는 공식 문서이기 때문에 식별 가능한 글씨체로 쓰고, 형식에 맞게 써야 한다. 나는 이전에 수정테이프를 사용하는 습관이 있었는데, 어느 날, 특허를 출원하는 과정에서 연구노트를 복사해서 제출해야 했는데, 하필이면 수정테이프를 사용한 페이지였다. 수정테이프 벗겨내고 형식에 맞춰 수정한 후 제출했다.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고 오늘부터 연구노트를 꼼꼼하게 쓰는 습관을 들이면 몇 달뒤면 어렵지 않게 기록하는 습관이 생겨 있을 것이다. 그리고 단언컨대, 이런 습관은 연구에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오늘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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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2)
naij23  |  2021.11.05 11:50     
자신의 연구 생활을 돌아보며 반성하고 성찰하는 모습이 멋지십니다. 저도 앞으로 이러한 정신을 가지고 연구나 탐구, 학습을 진행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hbond  |  09.14 00:50     
naij23님, 댓글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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