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 인 비디오] 유전자 이식 인류, 바이오아트의 장르를 개척하다
오피니언 / Bio통신원
최초여노 (2020-06-18)

최근 읽은 책 <4차산업시대, 예술의 길>에서 '바이오아트'를 다룬 6장이 눈길을 끌었다. 바이오아트는 생명체를 다루거나 생체실험처럼 창작을 하며, 물질을 강조하는 융합예술이다. 바이오아트는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첫째, 생명공학 자체를 주제로 다뤄 윤리적 문제를 제기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생명공학 기술을 활용해 예술적 표현을 시도한다. 형광토끼 '알바(Alba, 에두아르도 칵, 2000)'는 대표적인 바이오아트 작품이다. 

유전자 이식으로 탄생한 형광토끼

유전자 이식으로 탄생한 형광토끼 '알바'. 바이오아트는 과연 예술일까,
예술을 가장한 유희에 불과할까? 이미지 = 참고 2. 

 

특히 식물과 동물의 유전자를 융합해 독특한 작품을 만드는 경우가 있다. '수수께끼의 자연사(Natural History of Enigma, 2009)'나  '선인장 프로젝트((The Cactus Project, 2004)', '살아있는 빛 : 발광 박테리아의 빛에 의한 사진(Living Light : Photographs by the Light of Bioluminescent Bacteria, 2010-2017)' 등이다. 또한 자신의 몸을 실험대상으로 한 '말이 내 안에 살기를(may the horse in me, 2011)' 역시 말의 혈장을 수혈 받은 후 변화를 예술로 표현했다. 

 

자신의 팔에 귀를 이식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스텔락.

자신의 팔에 귀를 이식해 전 세계적인 주목을 끌었던 스텔락.
팔에 이식된 귀에 마이크를 대고 의사의 목소리를 전달하는 데 성공했다고 한다. 사진 = 참고 3. 

 

조직공학을 이용한 바이오아트 역시 특이함으로 주목을 받았다. '추가된 귀 : 팔 위의 귀(Extra Ear : Ear on Arm, 2006)', '인간의 저편(Beyond the Human Being, 2010)'은 아티스트들이 자신의 몸을 이용해 바이오아트를 창작했다. 예술의 경계는 점차 확장돼 바이오아트에 이르렀다. 

<4차산업시대, 예술의 길>에선 바이오아트가 생명의 미적 가능성에서 출발하고, 그 미적 가능성을 지향한다고 밝혔다. 이 가운데 윤리적 문제점이 발생한다. 예를 들어 실험용 쥐를 예술적 창작에 활용하면서 생명을 앗아간다면, 그 행위는 정당성을 부여받지 못한다. 

 

융합의 경계는 확장되고 희미해진다

바이오아트가 인간적임이 무엇인지에 대한 중요한 질문을 한다는 입장이 있다. 과연 '정상적(normal)'이란 것 무엇인가? '바이오퀴어'를 보면서 인간으로서 정상적임이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바이오윤리와 바이오아트 : 회색 지대에 대해 영감을 주는 풍부한 대화들’이란 TED 강연을 보면, 바이오아트가 시인인 블레이크나 바이런처럼 유전체를 쓰면서(be writing genomes) 풍부한 예술적 영감을 불러올 것이라고 밝혔다. 
 

누군가 자신의 아이를 파란색 눈과 피부를 갖고, 많은 팔다리와 머리카락 대신 비늘을 갖도록

누군가 자신의 아이를 파란색 눈과 피부를 갖고, 많은 팔다리와 머리카락 대신 비늘을 갖도록
유전적으로 조작해 태어나게 한다면, 지탄을 받게 될까? 아니면 자유의 영역에 머물게 될까? 사진 = 참고 4.

 

아담 스잘란스키라는 사람은 자신의 아이가 파란색 눈과 피부를 갖길 원한다. 그는 아이가 지네처럼 많은 팔다리를 갖길 바란다. 특히 머리카락 대신에 (어류나 파충류의) 비늘을 갖길 바란다. 강연자인 메리 워드는 바이오테크놀로지를 이용해 연구를 진행하는 '카운터 컬처' 공동설립자이다. 그녀는 과연 인간적인 것이 무엇인지 질문한다. 파란색 눈과 피부를 가진다는 게 덜 인간적인지 반문하는 것이다. 더 많은 팔다리를 갖고, 머리카락 대신에 비늘을 갖는다면, 그는 사람이 아닐까? 예술과 과학, 윤리의 경계는 더욱 희미해진다. 
 

우리의 농장이 언젠가 이와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예술 작품이다

우리의 농장이 언젠가 이와 같은 모습이 되지 않을까, 라는 경고를 하고 있는 예술 작품이다.
인간에게 필요한 형태로 바뀌어 버린 닭들은 끔찍하다. 이미지 = 참고 5. 

 

인간적 혹은 정상적이라 함은 무얼 의미하나

우리는 과학기술 없이 살 수 없는 시대에 있다. 따라서 예술 역시 과학기술의 기법을 차용해야 한다. 바이오아트에도 단계가 있다. 워싱턴대학교 예술과 과학 연구소의 '바이오아트 : 예술과 과학의 경계를 확장하다'의 동영상을 보면, 바이오아트는 낮은 단계에서 단순히 즐거움을 주는 차원으로 접근할 수 있다. 몸에서 특정 향이 나도록 작용 하는 약을 먹는 것이다. 좀 더 진지한 단계로 가면, 사회에 대한 비판의 차원으로 나아간다. 인류의 미래는 낙관적이지만은 않기에 디스토피아의 미래를 경고하는 차원에서 바이오아트가 역할 하는 것이다. 무거운 접근은 바이오픽션이나 SF를 통해 나타난다. 
 

바이오아트

'바이오아트'라는 단어를 만들고, 선구적인 작업을 해오고 있는 에두아르도 칵.
그는 자신의 몸에 바이오칩을 심으면서 '타임 캡슐'이라는 행위 예술을 펼쳤다. 사진 = 참고 6. 

 

'바이오아트'라는 단어를 만든 미디어 아티스트 에두아르도 칵(Eduardo Kac)은 TED 강연에서 자신의 작업을 소개했다. 그는 앞으로 예술은 '살아 있는' 것들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칵은 우리 피부가 유비쿼터스 감시 시대에 사생활이 지켜지는 마지막 보루라고 설명했다. 

1997년 그는 자신의 몸에 디지털 마이크로칩을 심었다. '타임 캡슐'이라는 바이오아트 첫 작품이었다. 사람들은 TV와 인터넷으로 연결돼 생중계되는 바이오칩의 장면들을 볼 수 있었다. 특히 칵은 아날로그 대 디지털, 내부화 대 외부화, 생물학 대 과학기술, 근접함 대 멀리 떨어짐 등의 경계에 대한 질문을 던져보고자 했다. 

칵은 인간의 DNA에는 바이러스나 세균의 DNA 조각들(fragments) 일부가 남아 있기에 이미 유전자 이식 인류라고 말했다. 최근까지도 몰랐지만 말이다. 칵에 따르면, 인간은 인간 세포에 비해 10배 이상의 세균 세포들을 몸에 갖고 있다. 10조개의 인간 세포 대 100조 개의 세균 세포로 비유된다. 그래서 인간은 전혀 혼자 외로운 존재가 아니며 일종의 네트워크다. 

우리는 세균과 공생 관계 속에 살고 있다. 칵은 인간은 다른 사람, 즉 부모의 DNA도 갖고 있는 존재이므로, 더더욱 유전자 이식 인류라고 강조했다. 이런 철학 속에서 칵은 자신의 여러 바이오아트 작품들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는 종들 간의 경계나 장벽은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인간은 진화의 나무에서 꼭대기에 있는 게 아니라 네트워크의 스펙트럼에 존재한다는 입장이다. 좀 더 확장된 생명의 공동체 안에 있는 게 인간이다. 

어떤 비판이 가해지든, 미디어나 바이오 혹은 과학기술의 차원에서 바이오아트는 계속 진화할 것이다. 분명한 건 예술인들은 과학기술과 과학기술윤리를, 과학기술자들은 예술을 더욱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야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괴물 같은 바이오아트 작품이 탄생하지 않을 것이다.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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