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올림픽] 시간을 달리는 숲
생명과학 / Bio통신원
건빵 (2020-03-31)

"진화의 관점을 떠나서는 생물학의 어떤 것도 의미를 갖지 못한다 (Theodosius Dobzhansky, 1973)."

진화에 대한 다윈과 월리스의 통찰은, 그들 이전과 이후의 모든 생물학 연구에 비로소 맥락을 부여했습니다. 인류는 현존하는 모든 생물종이 처음부터 완벽한 형상으로 빚어진 게 아닌, 지금도 꾸준히 변화하고 있는 미완성작이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우리는 진화의 관점을 통해, 그들이 오랜 시간 동안 상호작용을 통해 만들어낸 거대한 생명의 나무(Tree of Life)를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령이 가장 오래된 브리슬콘 소나무가 자라는 므두셀라 숲

그림 1. 수령이 가장 오래된 브리슬콘 소나무가 자라는 므두셀라 숲(Methuselah Grove). 그림을 클릭하면 원출처로 이동. © 2015 The New York Times Company. Photo: Domingo Milella

 

캘리포니아의 건조한 고산지대에 자생하는 브리슬콘 소나무(Pinus longaeva)는 5,000년을 사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 나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장엄한 풍경은 태초부터 지금까지 전혀 변하지 않았을 것만 같은 느낌을 줍니다 (그림 1). 하지만 이들의 나이테와 DNA에 새겨진 기록을 찬찬히 뜯어보면, 이 숲 또한 끊임없이 변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죠. 이들은 인간이 문명을 일구기 전부터 바람에 꺾이고, 산불에 그을리고, 병해충의 침입을 견뎌내며 자라왔습니다. 때가 되면 송홧가루를 뿜어내고 솔방울을 맺었으며, 숲의 틈과 가장자리에 어린나무를 키워냈죠. 그렇게 오랜 시간 동안 수많은 나무가 쓰러지고 다시 자라며 개체군의 유전자풀(gene pool)과 지리적 분포는 서서히 변화해왔습니다. 가만히 멈춰 있는 것처럼 보이는 브리슬콘 소나무지만, 그들 역시 진화의 이어달리기에서 쉬지 않고 달려온 주자입니다.

 

나무의 부끄럼(tree shyness)이라고도 불리는 수관의 상호 회피 현상

그림 2. 나무의 부끄럼(tree shyness)이라고도 불리는 수관의 상호 회피 현상. 그림을 클릭하면 원출처로 이동. © Stuart Franklin

 

최초의 나무가 나타난 이후 3억 년이 지난 지금, 전 세계에 현존하는 나무는 6만여 종에 이릅니다 (Beech et al., 2017). 나무의 ‘다른 식물보다 오래 살고 높게 자란다’는 전략은 육상식물 계통의 진화 과정에서 여러 번 반복되며 탐구됐습니다. 그래서 6만 수종의 세부적인 적응은 모두 다릅니다. 활엽수는 넓적한 잎과 다양한 종류의 열매를, 침엽수는 바늘잎과 구과를 진화시켰습니다. 어떤 수종은 습한 계곡에서, 어떤 수종은 건조한 능선에서 자랍니다. 마치 숲의 임관(canopy)이 ‘서로를 부끄러워하는’ 수관(crown)으로 이뤄진 것처럼 (그림 2), 경쟁배타(competitive exclusion)의 원리는 군집 내의 종들이 서로 다른 기능적 형질(functional trait)이나 지위(niche), 혹은 시공간적으로 상이한 분포를 나타내도록 유도합니다. 진화는 한정된 자원에 대한 개체의 이용 전략에 선택압을 가함으로써 개체군과 종의 분화를 추동합니다.

 


 
<p>그림 3. 최신 유전자 연구(Schlebusch et al., 2017)를 기반으로 한 호모사피엔스의 계통수(phylogentic tree).

그림 3. 최신 유전자 연구(Schlebusch et al., 2017)를 기반으로 한 호모사피엔스의 계통수(phylogentic tree). 현생인류의 유전자에 네안데르탈인과 데네소바인 등 멸종한 고인류의 유전자가 유입된 것을 볼 수 있음. 그림을 클릭하면 원출처로 이동. © Dbachmann

 

생명의 나무는 하나의 줄기를 가지고 있고, 모든 종에게는 공통 조상이 있습니다 (그림 3). 이제까지 존재했던 모든 종은, 그들의 개체군을 둘러싼 무생물 및 생물 요소와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을 통해 분화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무지개에 경계가 없듯, 종이 분화하는 그 순간은 결코 실시간으로 관찰될 수 없습니다. 이는 분화가 일어나려면 먼저 한 종의 유전자풀 내에서 상이한 선택압이 꾸준히 작용하여 개체군 사이 서로 다른 유전적 다양성이 확보되어야 하고, 동시에 개체군의 경계를 ‘흐리는’ 연속적인 적응 형태가 모두 사라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간단히 말해, 종과 종 사이의 경계는 단숨에 그려지는 것이 아니라 오랫동안 지워지면서 생겨납니다. 그래서 종의 개념은 무지개를 불연속적인 몇 개의 색으로 단순화시키는 것만큼 불완전합니다. 우리는 이 빛의 스펙트럼이 틈 없이 연속적으로 이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으니까요.

 

브리슬콘 소나무(▼)와 폭스테일 소나무(●)의 분포

그림 4. 브리슬콘 소나무(▼)와 폭스테일 소나무(●)의 분포 (Bentz et al., 2017). 그림을 클릭하면 원출처로 이동.

 

브리슬콘 소나무의 분포는 여러 아고산대에 불연속적으로 걸쳐져 있습니다 (그림 4). 하지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각 개체군의 변화를 추적할 수 있다면, 모든 개체군이 연속적인 분포를 가졌던 시점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시간을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수종의 유전자풀이 근연종인 폭스테일 소나무(Pinus balfouriana)와 맞닿는 시점을 만날 겁니다. 한때 두 소나무는 같은 종이었지만, 시간의 흐름 속에서 많은 중간 개체군을 잃었습니다. 두 종은 여전히 교잡종을 형성할 수 있지만, 이미 두 종 사이의 지리적 거리가 너무 멀어졌습니다. 이렇게 개체군 사이 유전자의 흐름이 줄어든 채로 오랜 시간이 지나면 각 유전자풀의 이질성이 증가하고, 어렵사리 교잡종이 나타나도 적합도가 떨어져 도태되게 됩니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지만(Natura non facit saltus)", 사후적으로는 그렇게 보입니다.

진화의 역사를 통틀어 생물종의 가짓수는 점진적으로 증가해왔습니다. 하지만 생물종의 다양성은 지구시스템의 급격한 변동으로 인해 줄어들기도 합니다. 인간은 산업혁명 이후 고작 200여 년 동안 300만 년의 시간을 되돌리는 수준으로 지구를 가열시키고 있습니다 (Burke et al., 2018). 과연 브리슬콘 소나무는 이러한 전례 없는 기후변화 속도에 굴하지 않고 계속해서 이어 달릴 수 있을까요?

물론 진화의 관점에서 보면, 지금은 숲보다 인류를 더 걱정해야 할 상황인 것 같습니다.

 

참고문헌

Burke, K.D., Williams, J.W., Chandler, M.A., Haywood, A.M., Lunt, D.J. and Otto-Bliesner, B.L., 2018. Pliocene and Eocene provide best analogs for near-future climates. Proceedings of the National Academy of Sciences, 115(52), pp.13288-13293.

Beech, E., Rivers, M., Oldfield, S. and Smith, P.P., 2017. GlobalTreeSearch: The first complete global database of tree species and country distributions. Journal of Sustainable Forestry, 36(5), pp.454-489.

Bentz, B.J., Hood, S.M., Hansen, E.M., Vandygriff, J.C. and Mock, K.E., 2017. Defense traits in the long‐lived Great Basin bristlecone pine and resistance to the native herbivore mountain pine beetle. New Phytologist, 213(2), pp.611-624.

Schlebusch, C.M., Malmström, H., Günther, T., Sjödin, P., Coutinho, A., Edlund, H., Munters, A.R., Vicente, M., Steyn, M., Soodyall, H. and Lombard, M., 2017. Southern African ancient genomes estimate modern human divergence to 350,000 to 260,000 years ago. Science, 358(6363), pp.652-655.

정보출처: BRIC 바이오통신원
<본 기사는 기관에서 작성된 보도자료 또는 개인에 의해 작성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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