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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피·대변 한 덩이면…생체시계, 30년 되돌릴 수 있다 [Science]

이새봄 기자
입력 : 
2022-08-15 17:07:22
수정 : 
2022-08-16 11: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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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화 막는 `역노화` 연구 봇물
불로장생의 꿈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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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너선 스위프트의 소설 '걸리버 여행기'에는 영원히 죽지 않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럭나그가 등장한다. 영원히 죽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은 많은 지구인들의 꿈이지만 나이가 들어가며 병약하고 추악해진 모습으로 죽지 못한 채 살아가는 럭나그의 영생인들에게는 도리어 '죽는 것'이 꿈이다. 몸은 병들고, 시대 흐름을 따라가지 못해 젊은이들과 소통할 수 없어 무시당하는 그들에게 장수란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럭나그의 영생인들이 얻지 못한 것은 '젊음'이다. 장수를 향한 인간의 꿈은 단순히 영원히 사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젊음이 전제되지 않는 영생은 럭나그인들의 삶처럼 오히려 재앙이 될 뿐이다. 과학자들은 생체 시계를 되돌리는 불가능한 꿈을 이루기 위해 수십 년간 몰두했고 실마리를 찾아가는 과정에 있다. 구글과 아마존 등 글로벌 빅테크가 젊음을 유지하거나 젊음을 되돌리는 '역노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이유다.

아마존과 블루오리진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실리콘밸리 노벨상인 '브레이크 스루상'을 만든 러시아계 억만장자 유리 밀러와 함께 지난해 역노화 연구 스타트업인 '알토스랩스'에 총 30억달러(3조9000억원)에 달하는 투자를 해 관심을 모았다. 알토스랩스는 지난 1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공식 출범해 5월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했다. 이에 앞서 구글의 모기업 알파벳은 2013년 노화 원인과 수명연장에 대해 연구하는 기업 '칼리코'를 세웠다. 칼리코는 2014년부터 글로벌 제약사 애브비와 15억달러를 투자해 노화방지 치료제를 개발 중이다. 오라클의 공동창업자인 래리 앨리슨은 1997년 노화 연구에 주력하는 '앨리슨 의학재단'을 설립하고 이미 수억 달러 이상을 지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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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노화 연구는 다양한 갈래로 진행되고 있다. 대표적인 연구가 알토스랩스가 집중하고 있는 방법으로 세포의 생체 시계를 거꾸로 돌리는 방법이다. 2012년 노벨 생리학상 수상자인 야마나카 신야 교수는 다 자란 성체 세포를 여러 종류의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미분화 세포인 '줄기세포'와 같은 원시 상태로 돌리는 기술을 개발했다. 그는 알토스랩스의 수석 과학고문이기도 하다. 신야 교수는 성체 세포를 원시 상태로 돌릴 수 있는 네 가지 인자를 찾아내 이를 자신의 이름을 따 '야마나카 인자'라고 명명하고 이들을 주입해 만들어낸 줄기세포를 '유도만능 줄기세포(IPS)'라고 불렀다. 우리 몸은 세포로 구성돼 있기 때문에 노화된 세포를 되돌릴 수 있다면 이론적으로는 신체의 회춘도 가능해진다. 실제 최근 영국 케임브리지대 생명과학연구소는 53세 실험자의 성체피부세포에 야마나카 인자들을 주입해 30년이 젊어진 23세의 피부 세포로 되돌리는 데 성공했다. 성체 세포를 줄기세포인 IPS의 형태로 되돌리기 위해서는 야마나카 인자들을 약 50일간 주입해야 하는데, 연구진은 50일이 아닌 12일간만 인자를 주입해 '회춘'을 시킨 셈이다. 이들은 30년을 되돌린 피부세포가 실제 정상적인 피부로서 기능을 하는지 지켜본 결과 콜라겐 생성 등 본래의 역할을 할 수 있는 것으로 확인했다. 이들이 세포의 노화 시계를 확인해본 결과 실제 30년의 시간이 되돌려진 것으로 밝혀졌다. 이 연구를 주도한 볼프 라이크 케임브리지대 과학연구소장은 같은 대학 캠퍼스 내에 6월 문을 연 알토스랩스 영국 연구실에서 노화 연구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한다.

하지만 역분화 기술에는 여전히 한계가 존재한다. IPS는 배아줄기세포처럼 모든 세포로 분화할 수 있는 능력인 '전분화능'을 가지고 단시간에 빠르게, 많이 세포가 증식할 수 있다. 반면 증식의 속도를 조절하지 못하면 암이 생길 수 있다. 알토스랩스 내의 '드림팀'들이 생체 시계를 되돌리기 위해 집중하는 부분도 이 부분이다.

다른 치료법을 쓰지 않고 노화를 늦추는 방법으로 제안되는 것은 '식이제한'이다. 식이제한이 전반적으로 노화와 관련된 질환을 감소시킨다는 사실은 이미 1935년 연구를 통해 밝혀진 만큼 역사가 깊다. 2009년 평균수명 27년인 붉은 털 원숭이를 대상으로 진행한 한 연구에서는 30% 열량을 줄인 식단을 20년간 제공한 원숭이 그룹이 심장질환과 당뇨 등의 성인 질환이 3분의 1가량으로 줄었으며, 두뇌 퇴행도 늦었다는 결과가 나왔다. 이승재 KAIST 생명과학과 교수는 "식이 제한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연구자들이 밝혀낸 흥미로운 사실은 쥐의 실험 결과 마음껏 먹는 경우와, 특정 시간은 단식을 하고 특정 시간에만 식사를 하는 '간헐적 단식'으로 인해 섭취하는 음식의 총량이 변하지 않더라도 장수가 유도됐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즉 줄어든 칼로리 자체가 아니라 굶었을 때의 상황이 장수를 유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음식을 먹지 않았을 때 생체의 상황을 흉내 낸다면 굳이 식이제한을 하지 않고도 장수가 가능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그는 지난 6월 한국과학기술한림원이 역노화를 주제로 개최한 200회 한림원탁토론회에서 '노화 탐구의 현장'이라는 주제로 이 같은 내용을 발표한 바 있다.

과학자들은 이미 판매되고 있는 의약품 중 굶었을 때 신체의 상태로 만들어주는 의약품들을 탐색했다. 이 교수는 "에너지 조절 단백질의 활성을 조절해 세포 내 에너지 감소상황의 신호를 주는, 간헐적 단식의 효과를 나타내는 후보약들에 대한 연구가 진행 중"이라고 설명했다. 임상시험을 통해 허가를 받은 의약품인 만큼 효능이 확실하다면 바로 적용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대표적인 약이 당뇨병 치료제로 알려진 '메트포르민'이다. 1920년대에 만들어진 메트포르민은 유럽에서 수백 년 동안 당뇨병 치료제로 사용돼온 식물 '고트스루'의 성분 구아니딘을 변형시킨 약물이다. 2014년 학술지 '당뇨·비만대사'에 실린 논문에 따르면 메트포르민을 꾸준히 복용한 당뇨 환자의 사망률이 다른 약물을 복용한 환자보다 낮은 것으로 조사됐다. 미국에서는 2016년부터 현재까지 '메트포르민으로 노화를 잡는다'는 의미의 TAME(Targeting Aging with Metformin) 시험이 미국 내 14개 센터, 3000명의 다양한 인종의 비당뇨병 피험자를 대상으로 진행 중이다.

1960년대 칠레 이스터섬 토양에서 발견된 박테리아로 만든 면역억제제 '라파마이신'도 노화 억제 물질로 관심을 받고 있다. 라파마이신은 여러 동물 실험을 통해 포유류 수명을 연장시키는 효과가 있음이 밝혀졌다. 2016년 워싱턴대가 학술지 이라이프에 발표한 논문에 따르면 20개월 된 늙은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눈 뒤 90일간 한 그룹은 라파마이신을, 다른 그룹은 위약을 투여한 결과 라파마이신을 투여받은 쥐들이 최대 60% 이상 오래 생존한 것으로 조사됐다.

마치 뱀파이어처럼 젊은 피를 수혈해 젊음을 찾는 방법도 항노화 분야의 주요 연구 대상이었다. 2005년 학술지 네이처에는 늙은 쥐와 젊은 쥐의 혈관을 연결했더니 늙은 쥐의 상처 회복 속도가 빨라졌다는 미국 스탠퍼드대와 UC버클리 연구진의 논문이 발표됐다. 2014년 학술지 사이언스가 선정한 10대 뉴스에는 단백질 'GDF11'이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2013년 8월 미국 하버드대 의대 연구진이 찾아낸 GDF11은 적혈구와 백혈구를 만들어내는 지라(비장)에서 만들어지는데, 늙은 쥐에게 젊은 쥐의 GDF11만 따로 분리해낸 뒤 주입하자 회춘 효과가 나타났다. 이후 GDF11이 늙은 쥐의 근육량을 증가시키고 새로운 혈관을 자라게 하는 등 여러 효과가 확인됐다. 젊은 피 수혈 효과의 핵심이 GDF11이라는 설명이다. 같은 해 미국 캘리포니아대 의대 연구진은 늙은 쥐에게 젊은 쥐의 피를 반복적으로 투여한 후 이 쥐의 기억력이 향상하는 것을 확인했다. 2017년 11월에는 스탠퍼드대 연구진이 65세 이상 치매 환자 18명에게 젊은 사람의 혈액에서 추출한 혈장을 투여한 결과 치매 증상이 완화됐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미국 벤처기업 암브로시아는 2018년 16~25세 청년들의 혈액을 공급받아 35세 이상의 '고객'들에게 주입하는 사업을 시작했고 1ℓ에 약 8000달러라는 가격에도 인기를 모았다. 하지만 이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이 젊은이의 혈장을 주입하는 것에 대한 효능이 임상적으로 입증된 바 없으며 감염·인체거부반응 등이 일어날 수 있다고 경고하자 이 회사는 수혈 치료를 중단했다.

'젊은 피'의 대안으로 과학자들은 분변, 즉 젊은이들의 '똥'을 활용하는 방법도 적극적으로 연구 중이다. 지난해 아일랜드 국립대인 유니버시티 칼리지 코크의 존 크라이언 교수(해부학·신경과학) 연구팀은 '젊은 미생물 군집(마이크로바이옴)'이 노화된 신체의 징후를 역전시킬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웠다. 많은 연구를 통해 장내 미생물들이 인간의 기분을 비롯해 전반적인 건강 상태 등 많은 것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은 밝혀졌다. 하지만 이들이 노화를 막아줄 수 있는지는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연구팀은 인간으로 치면 청·장년인 3개월 된 '젊은 생쥐'의 분변을 채취해 '노인 쥐'인 20월령의 생쥐에게 이식했다. 나이 든 쥐는 8주 동안 일주일에 두 번 먹이튜브를 통해 젊은 쥐의 분변을 공급받았다. 젊은 생쥐의 대변이 실제 노인 쥐의 '회춘'에 영향을 미쳤는지 확인하기 위해 같은 월령의 또 다른 노인 쥐는 '노인 쥐'의 분변을 공급받았다. 8주간의 실험 결과, 어린 쥐의 분변을 공급받은 늙은 쥐의 장내 미생물 군집이 점차 어린 쥐의 미생물 군집과 닮아가기 시작했다. 예를 들어 아주 일반적인 장내미생물 중 하나이자 젊은 쥐에게 특히 풍부했던 '엔테로코커스(Enterococcus)'의 양이 노인 쥐에게도 많아졌다.

놀라운 것은 뇌에도 점차 변화가 생겼다는 것이다. 학습·기억과 관련된 뇌 영역인 '해마'가 어린 쥐의 해마와 물리적·화학적으로 더 비슷해진 것이다. 어린 쥐의 변을 공급받은 늙은 쥐는 미로를 더 빨리 풀었을 뿐 아니라 이후에도 미로의 경로를 더 빨리 기억해냈다. 동년배 생쥐의 분변을 이식받은 나이 든 생쥐에게는 이 영향이 관찰되지 않았다. 연구진은 이러한 결과를 지난해 8월 과학저널 '네이처 에이징'에 보고했다. 연구 책임자였던 크라이언 교수는 이 실험 결과를 놓고 "마치 노화 과정의 되감기 버튼을 눌러 다시 되돌린 것 같다"고 설명했다.

수명 30년 아프리카 쥐, 한평생 노화 없이 살아…100년 사는 바닷가재, 인간과 달리 암 안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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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한 삶은 없지만 영원한 젊음이 있는 동물들이 있다. 비슷한 다른 종류의 동물보다 훨씬 오래 살면서도 노화의 흔적이 없다. 이들은 죽기 직전까지 건강하게 장수하고 싶은 인간들의 꿈을 이뤄줄 열쇠가 될 수 있다. 구글 공동 창업자 세르게이 브린과 래리 페이지는 2013년 칼리코를 설립하면서 장수 동물의 '늙지 않는 비결'을 밝혀 인간 수명을 획기적으로 연장시키겠다는 야심 찬 포부를 전했다. 그들의 눈을 사로잡은 것은 아프리카 지역 땅속에 사는 길이 8㎝의 작은 동물 '벌거숭이 두더지쥐'다.

벌거숭이 두더지쥐는 평균수명이 4년인 실험실 쥐와 몸집이 비슷하지만 8배나 더 오래 산다. 칼리코 연구진은 2018년 국제학술지 이라이프(eLife)에 벌거숭이 두더지쥐가 수명이 다할 때 까지 일반적인 노화가 진행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표했다. 이들은 노화로 사망하는 게 아니라 감염 등으로 생기는 질병이나 돌연변이, 외부 사고 등 기타 요인으로 죽는다. 따라서 이상적인 환경만 조성된다면 평균수명을 훨씬 뛰어넘은 생존도 가능하다.

이들은 손상된 DNA를 빠르게 회복시켜주는 '샤페론 단백질' 수준이 다른 동물과 비교해 매우 높았다. 또한 항암능력이 있고 낮은 산소 농도에서도 생존이 가능하다. 두더지쥐는 사람과 마찬가지로 포도당을 이용해 에너지를 얻는다. 포도당을 이용한 에너지 대사에는 산소가 필요해 포유류는 반드시 호흡을 한다. 하지만 두더지쥐는 상황에 따라 과당을 이용하는 다른 생화학 과정을 통해 에너지를 얻는다. 이들은 최대 18분간 숨을 쉬지 않고도 생존할 수 있다.

특별한 날 식탁에 오르는 '바닷가재'도 대표적인 무병장수 생명체다. 랍스터 중에서도 특히 미국 랍스터는 바다 밑바닥에 서식하면서 최대 100년까지 산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약 40%가 한 번 이상 암에 걸리지만 미국 랍스터는 최근 60년간 단 한 마리만 암에 걸렸다. 미국 글로스터 해양유전체학 연구소 연구진은 2019년 미국 바닷가재 유전체 중 72%를 분석하는 데 성공했다. 이 과정에서 바닷가재 유전체가 인간보다 더 길 수 있다는 사실도 발견했다.

바닷가재는 특유의 이온 통로를 가지고 있다. 이온 통로는 뉴런을 발화하거나 면역세포가 외래물질을 인식하는 등 다양한 생리작용에서 핵심 역할을 맡는다. 논문에 참여한 안드레아 보드나르 생화학 박사는 "바닷가재에 있는 이온 통로는 면역세포와 신경세포에서 발견됐는데, 이를 활용한 신경면역 상호작용이 미국 바닷가재가 갖고 있는 질병 저항성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일반적으로 동물들은 몸집이 크고 세포 수가 많으면 수명이 짧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특히 개는 크기가 클수록 작은 개에 비해 수명이 짧다. 일반적으로 동물의 몸집이 크고 세포 수가 많으면 세포가 분열할 때 DNA 돌연변이가 발생하기 쉬워 질병에 더 잘 걸린다는 게 정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코끼리는 사람보다 세포 수가 100배나 더 많은 거대 동물이지만 평균수명은 약 70세로 길면서 동시에 암에 거의 걸리지 않는다. 코끼리의 암 발병률은 약 5%로 사람(40%)의 8분의 1 수준에 불과하다.

이런 코끼리에서 '항암 유전자'를 찾으려는 연구도 적극 이뤄지고 있다. 2015년 조슈아 시프먼 미국 유타대 교수 연구팀은 코끼리가 항암 유전자를 인간보다 20배 더 많이 가지고 있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2017년 빈센트 린치 미국 시카고대 교수는 진화 과정에서 한때 기능을 잃어버렸던 코끼리 항암 유전자가 부활한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내기도 했다. 인간에게도 있는 '백혈병 억제 인자(LIF)' 중 하나인 'LIF6' 유전자가 코끼리 체내에서 작동을 멈췄다가 약 3300만년 전에 다시 살아났다는 것이다.

[이새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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