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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혐오]④ 점점 예민해지는 사회, 우울과 스트레스 악순환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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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 혐오]④ 점점 예민해지는 사회, 우울과 스트레스 악순환 빠져든다

2020.12.01 19:12
 

지난 10월 5일(현지시간) 세계보건기구(WHO)는 ‘세계 정신건강의 날(10월 10일)’을 앞두고 130개 회원국의 정신건강 서비스 실태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COVID-19·코로나19) 장기화로 정신건강 서비스가 필요한 이들이 늘었고 야외 활동 감소로 인한 결핍감과 감염병에 대한 공포와 불안이 커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른바 ‘코로나 블루(우울증)’로 불리는 코로나19에 따른 정신건강 연구도 나오고 있다. 미국 보스턴대 공중보건대학원과 브라운대 공중보건대학원 연구팀이 코로나19 이후 성인의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결과 무기력, 의욕 저하를 경험한 비율이 코로나19 이전 8.5%에서 코로나19 유행 이후 약 28%까지 3배 이상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결과가 공개된 9월 초 당시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는 “미국 내 코로나19 유행 이후 정신건강에 미치는 영향을 조사한 첫 결과”라며 “불안과 공포, 우울, 고립감 등이 수개월간 지속되면서 정신건강에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혔다. 

 

국내에서도 유사한 현상이 연구결과로 나왔다. 서울대 보건대학원 코로나19 기획연구단이 지난 9월 초 공개한 ‘코로나19와 사회적 건강’ 연구 1차 분석 결과에서 지난 5월과 8월 한국인들의 부정적 감정이 변화되는 양상을 보였다. 5월에는 불안이 62%, 분노가 11.5%였지만 8월 말 불안이 48%로 낮아진 반면 분노(25.3%)와 공포(15.2%)가 2배 이상 높아진 것으로 조사됐다. 

 

감염병 위기로 불안과 공포, 우울감과 스트레스가 높아진 사회는 부정적인 감정을 특정집단에 투영하고 이들에 대한 혐오나 인종차별로 이어진다. 동아사이언스 취재팀은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른 부정적인 감정이 실제로 혐오 감정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를 분석했다. 

 

박한선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서울대 인류학과 강사) 연구진과 온라인 조사 전문기업 네오알앤에스의 도움을 받아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한국판 우울·불안·스트레스 척도인 ‘K-DASS(Depression Anxiety Stress Scale)-21’을 활용한 조사를 수행했다. 여기에 일반적인 혐오 이벤트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를 분석할 수 있는 도구인 ‘혐오 민감성 척도(K-DS-R)’을 추가해 코로나19 유행 이후 혐오 민감도가 얼마나 높은지도 추가 조사했다. 

 

 

총 21문항으로 구성된 K-DASS-21은 심리과학에서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정도 조사로 정신건강의학과 임상 진단에서도 가장 광범위하게 활용되는 조사 도구다. K-DS-R은 혐오 정서 민감성을 측정하기 위해 1970~1980년대 미국 학계에서 개발된 도구로 인류학과 심리학 분야 등에서 지금까지도 널리 활용되고 있다. 취재팀은 조사 결과를 토대로 앞선 보도에서 코로나19 확산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는 특정집단(중국인, 대구 사람, 해외 입국 외국인, 신천지 교인, 태극기 집회 참석자)에 대한 정서 반응(호감도·신뢰도·감정온도)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는지 분석했다. 

 

통계 분석 결과 코로나19 이후 한국인들의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정도는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혐오 민감성에서도 보통 수준 이상의 혐오 민감도를 나타내고 있으며 이는 특정집단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치고 높아진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정도가 특정집단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을 매개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 연구조사에 참여한 유지현 서울대 인류학과 연구원은 “일반 인구집단의 혐오 민감성과 우울·불안·스트레스 정도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며 “이같은 심리가 잠재적 혐오 대상자인 특정집단에 대한 태도에 영향을 미쳤다”고 말했다. 

 

 

○ 평균 이상으로 높아진 한국인 혐오 민감성

 

진화인류학에서 혐오는 ‘행동면역체계(BIS)’의 발현으로 보고 있다. 혐오 정서는 음식이나 분비물 등에 대한 구역감이 근원이다. 기본적으로 병균에 대한 저항 인식과 병균을 몸에 들이지 않기 위한 감정이 혐오의 근원이다. 이같은 학계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구성된 혐오 민감성 척도인 ‘K-DS(Disgusting Scale)-R’은 15개 척도로 구성된다. 

 

 

만 18세 이상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K-DS-R을 조사한 결과 혐오를 유발하는 이벤트항목에 대한 평균 점수는 5점 만점(매우 역겹다)에 3.74점으로 나타났다. 보통 수준인 3점을 훌쩍 뛰어넘는 수치로 코로나19 장기화 이후 국민들의 혐오 민감성이 전반적으로 높아진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통상적으로 혐오 민감도가 낮게 나타나는 항목에 대해서도 평균 이상의 점수가 나왔다. ‘누군가 바닐라 아이스크림에 케첩을 뿌려먹는 것을 본다’에 대한 혐오 척도는 3.18점으로 3점(보통)을 넘어서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별로는 남성보다 여성이 혐오적인 상황에 훨씬 민감한 것으로 분석됐다. 응답자 중 남성의 혐오 민감성 점수는 3.62점이었지만 여성은 3.86점이었다. 연령별로는 50대 이상이 3.81점으로 가장 높게 나타났으며 권역별로는 수도권 응답자들이 타 지역 응답자에 비해 혐오 민감성 점수가 상대적으로 높았다. 조사 기간이었던 11월 18일부터 같은 달 20일까지 수도권을 중심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대거 발생한 데 대한 혐오 민감도가 높아진 것으로 해석된다. 

 

 

○ 20~30대·보수성향 우울·불안·스트레스 높아져

 

 

우울·불안·스트레스 척도로 활용된 도구인 ‘K-DASS-21’은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각 영역별로 7문항씩 총 21개 문항으로 구성됐다. ‘나는 안정을 취하기 힘들었다’ ‘숨쉬기가 곤란한 적 이 있었다’ 등의 문항에서 0~3점(0점=전혀 해당되지 않는다, 3점=매우 많이 또는 거의 대부분 해당된다)을 매기게 한뒤 응답자 전체의 점수 평균을 매겼다. 

 

K-DASS-21 척도에서 우울은 9점 이하가 ‘우울감이 없는 상태’, 10~13점이 ‘경증의 우울감이 있는 상태’, 14점 이상이 ‘중증 이상의 우울감이 있는 상태’로 나뉜다. 불안의 경우 7점 이하와 8~9점, 10점 이상으로 구분되며 스트레스는 14점 이하와 15~18점, 19점 이상으로 구분된다. 

 

조사 결과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모두 경증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 항목의 전체 평균 점수는 12.04점으로 경증의 우울감이 있는 상태에 해당됐다. 불안은 10.53점으로 중증 이상의 불안감이 있는 상태로 분석됐다. 스트레스의 전체 평균 점수는 13.70점으로 다소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정도는 세대별, 정치성향별로는 크게 엇갈렸다. 각 척도당 ‘없는 상태’와 ‘경증’ ‘중증 이상’으로 구분해 연령별로 분석한 결과 20~30대의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정도는 다른 세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20대 이하에서 중증도 이상의 우울에 해당되는 응답자는 47.8%로 2명당 1명꼴로 나타났다. 중증도 이상의 불안에 해당되는 20대 이하 응답자는 53.7%로 나타났고 중증도 이상의 스트레스에 해당되는 20대 이하 응답자도 38%에 달했다. 30대에서도 중증도 이상의 우울 47.8%, 중증도 이상의 불안 55.1%, 중증도 이상의 스트레스 32%였다. 20~30대에서 2명당 1명꼴로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에서 중증 이상을 보인 것이다. 

 

전체 평균 우울 점수에서도 이같은 세대별 특성이 반영됐다. 우울 점수의 경우 20대 이하 평균점수는 13.65점(경증), 30대 13.52점(경증)으로 상대적으로 높았고 40대도 12.28점(경증), 50대 이상 10.42점(경증)에 달했다. 불안 점수의 경우 20대 이하 평균점수는 11.92점(중증), 30대 12.24점(중증), 40대 10.87점(중증), 50대 이상 8.87점(경증)이었다. 스트레스 점수는 20대 이하 15.46점(경증), 30대 15.54점(경증), 40대 14.36점(경증), 50대 이상 11.61점(없는 상태)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코로나19는 젊은 세대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조사도 나왔다. 국제노동기구(ILO)가 8월 12일 발표한 보고서 ‘청년층과 코로나19: 일자리, 교육, 인권, 정신건강에 미친 영향’에 따르면 전 세계 18~29세 청년의 절반 가량이 불안과 좌절 등 우울감을 경험했고, 코로나19에 의한 불확실한 미래에 고통을 느낀 것으로 조사됐다.

 

정치 성향별로도 확연히 갈렸다. 자신을 진보성향이라고 한 응답자의 우울 점수는 10.79점, 불안 점수 9.54점, 스트레스 점수 12.84점인 반면 보수성향이라고 한 응답자의 우울 점수는 13.87점, 불안 점수 12.46점, 스트레스 점수 15.49점으로 상대적으로 대폭 높았다. 

 

 

○ 혐오 스위치 켜지자 호감도·신뢰도 낮아지고 거리감 늘어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게티이미지뱅크 제공

혐오 민감성 척도와 우울·불안·스트레스 척도로 분석한 결과를 바탕으로 코로나19 확산에 원인을 제공한 것으로 여겨지는 특정집단(중국인, 대구 사람, 해외 입국 외국인, 신천지 교인, 태극기 집회 참석자)에 대한 정서 반응(호감도·신뢰도·감정온도)과의 상관관계를 통계적 회귀분석 기법을 적용해 분석했다. 

 

그 결과 혐오 민감성이 높아지면 특정집단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는 낮아지고 거리감은 늘어나는 것으로 분석됐다. 코로나19로 인해 국민 대다수의 혐오 민감성이 높아진 상황에서 코로나19 확산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인식되는 특정집단에 대한 정서 반응에 영향을 주고 이는 결국 혐오 양상으로 전개된다는 것이다. 이같은 분석은 신뢰도 99.99% 수준에서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 과정에서 전반적인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가 혐오 민감성과 특정집단에 대한 태도 사이에 어떤 역할을 하는지 확인하기 위해 위계적 회귀분석을 실시한 결과 스트레스가 혐오 민감성과 특정집단에 대한 태도를 매개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혐오 민감성이 작동되면 스트레스가 높아지고 이는 특정집단에 대한 호감도와 신뢰도를 낮추고 거리감이 늘어나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것이다. 

 

유지현 서울대 인류학과 연구원은 “감염병 위기 상황에서 행동면역체계로서의 혐오감 센서가 예민해지고 예민한 사람들일수록 실제로 특정대상에 대한 혐오감을 크게 느끼고 호감도와 신뢰도에 더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연구결과에서 나타나는 것처럼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가 혐오 감정과 매개되는 악순환이 나타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혐오 감정은 인간의 기본 감정이기 때문에 억제하기는 어렵다”며 “혐오 센서가 켜지는 것은 감염병 위협에 대한 진화심리적인 반응이지 이성적인 판단은 아니며 오히려 혐오 감정이 우울과 불안, 스트레스 등 정신 건강에 좋지 않다”고 말했다.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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