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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용어 오해` 없애야 대처 가능

입력 : 
2020-07-02 11:1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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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중식 가천대 의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올 해 초부터 시작된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우리나라에서도 지속적으로 지역사회 전파와 해외유입으로 인한 확진 환자 발생이 이어지며 사회적 혼란과 위기가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또 다른 안타까운 사건이 벌어졌다. 우리 사회에서 가장 보호해야 하는 어린이가 생활하는 유치원에서 장출혈성 대장균에 의한 집단 식중독 사고가 발생한 것이다.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이 발생하면 경련성 복통, 구역감, 구토, 발열 등이 설사와 함께 발생하고 설사가 심해지는 경우 피가 섞여 나올 수 있다. 증상이 대부분 1주일 이내에 좋아지지만 드물게 용혈성 요독 증후군이라는 합병증이 발생하고 심한 경우 혈액투석을 해야 할 수 있다. 감염은 장출혈성 대장균에 오염된 소고기로 가공한 음식물을 섭취하면 발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우유, 생과일과 채소, 마요네즈 등의 오염된 식품을 통해서 이루어질 수 있으며, 식수는 물론 분변에 오염된 호수나 수영장 물을 통해서도 전파될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안산시 유치원의 경우 원생의 가족 중 감염 환자가 발생한 것처럼 사람과 사람의 접촉으로도 전파가 가능하다.

필자는 이번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의 유행 추이를 지켜보면서, 대부분의 언론이 '햄버거병'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고 있는 데 대한 큰 아쉬움을 갖게 되었다.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을 '햄버거병'이라고 부르는 배경에는 과거 햄버거를 만드는 과정에서 덜 익은 소고기 패티로 인해 이 병이 발생한 사례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제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의 원인을 분석한 자료를 보면 햄버거로 인한 경우는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 질병관리본부 자료에 의하면 지난 10년 간 미국에서 집단으로 발병한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은 총 27건으로 그 중 소고기로 인한 발생 건수는 5건으로 알려져 있고 나머지는 다른 음식물과 식수 오염이 주요 원인이었다. 우리나라의 경우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은 제3급 법정감염병에 해당하는데 2000년 이후 햄버거를 통한 유행 발생 사례는 드문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을 햄버거병이라고 부르고 심지어는 합병증인 용혈성 요독 증후군까지 햄버거병으로 통칭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언론에서 사용된 잘못된 명칭으로 인해 포괄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여러 감염 원인에 대한 정보가 희석되고, 이번 식중독과 인과관계가 밝혀지지 않은 '햄버거'로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은 마치 햄버거만 먹지 않으면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을 예방할 수 있다는 인식의 오류를 만들 수 있다. 또한, 다른 고위험 식품을 적절히 조리하거나 도마와 식기의 위생적인 관리, 그리고 개인위생과 같은 생활안전수칙을 철저히 지켜야 하는 것에 소홀해질 우려를 낳을 수 있다.

코로나19를 이제 중국 폐렴 또는 우한 폐렴이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나라에서 심한 유행을 보였던 것과 관련하여 신천지 폐렴이나 교회 폐렴 또는 대구 폐렴이라고 부르지 않는다. 감염 질환의 원인이나 감염경로와 상관없는 특정 국가, 지역, 단체, 인구집단에 대한 혐오를 부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2009년 전국을 휩쓸었던 신종플루도 유행 초기 돼지독감이라고 알려지면서 사실관계와 상관없이 유행시기에 돼지 소비를 크게 감소시켜 축산 농가의 피해로 이어졌다. 코로나19로 인한 소상공인의 경제적 피해가 커져가는 상황에서 소규모 햄버거 음식점의 영업 손실이 발생하는 것에 대한 책임을 언론이 질리 만무하다. 다시 강조하지만 감염병의 잘못된 명칭은 근본적인 문제 해결과 효과적인 관리를 저해한다는 측면에서 결코 가볍게 넘길 일이 아니다.

코로나19 이후 우리나라 정부의 방역체계와 감염병 관리체계가 높은 수준에 도달했다. 오염된 식자재로 인한 식중독이 많이 감소한 상태이지만 한 순간의 방심은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과 같은 심각한 감염병을 유발하고 대규모 유행으로 이어질 수 있다. 무엇보다 이번 장출혈성 대장균 감염증 유행의 원인을 확실하게 밝혀야 더 큰 유행의 발생을 막을 수 있다. 또한 이번 기회에 우리 어린이에게 안전한 급식을 제공하기 위한 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한 모든 노력을 다해야 한다. 다양한 원인과 감염경로를 가진 감염병을 효과적으로 관리하기 위한 근본적인 노력이 시급한 가운데 감염병의 원인을 왜곡하고, 특정 식품에 대한 마녀사냥이 될 수도 있는 부정확한 명칭 사용은 자제하기를 바란다.

[엄중식 가천대 의대·길병원 감염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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