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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쌓인 지금은 ‘인류世’ 시대… 생태 위기 해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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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스틱 쌓인 지금은 ‘인류世’ 시대… 생태 위기 해법은?

2019.12.13 06: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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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포천시 야산에 불법으로 버려진 쓰레기가 쌓여 있다. 플라스틱과 콘크리트 등 인류 문명에 의한 폐기물이 퇴적층에 영향을 미치는 시점을 ‘인류세’라는 별도의 지질시대로 구분하자는 제안이 있다. 동아일보 DB

 

최근 과학계에서는 인류가 지구에 미친 영향이 커진 만큼 새로운 지질시대로 구분해야 한다는 논의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지구의 지질시대는 가장 큰 단위가 고생대와 신생대, 중생대 같은 대(代)이고 중간이 페름기, 백악기 같은 기(紀), 가장 작은 단위가 팔레오세, 플라이스토세 같은 세(世)다. 지질학계는 유럽 대륙의 빙하기가 끝나면서 거대한 빙상이 사라지고 바닷물이 130m 급상승한 1만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홀로세’로 구분해 왔다.

하지만 1980년대 들어 일부 학자는 여기에서 더 세분화해 인류가 현재 ‘인류세’라는 새로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인류가 각종 자원을 사용하고 플라스틱과 중금속 폐기물을 지층에 남기기 시작하면서 지구에 미친 악영향을 별도의 지질시대로 구분해 경각심을 알려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은 2000년대 들어 더욱 확산되면서 학계에서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졌으나 아직 지정은 되지 않은 상태다. 인류세 시작 시점을 두고는 여전히 이견이 많지만 플라스틱과 콘크리트가 퇴적층에서 발견되기 시작한 1950년대를 시점으로 보아야 한다는 학설이 가장 힘을 얻고 있다.

주로 과학자들이 주도하던 인류세 논의는 최근 경제학과 사회학, 인류학 등 사회과학과 인문학으로도 확장하고 있다. 이달 10, 11일 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에서 KAIST 인류세연구센터와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이 개최한 국제 인류세 심포지엄에 모인 전문가들은 “인류세가 다른 분야의 비판과 논의를 통해 더 정교해지고 풍성해지는 융합 연구 단계에 돌입했다”며 “인류가 직면한 기후변화 등 생태적 사회적 위기를 이해하고 극복하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인류세 논의 과정에 ‘지구의 불평등’을 고려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사회학자와 경제학자들은 과학자들이 ‘인류가 지구에 미친 영향’에만 주목하다 보니 전 세계 모든 인류를 하나로 뭉뚱그리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한다. 인류세와 기후변화 분야의 석학인 윌 스테펀 호주국립대 석좌교수는 “인류세를 촉발한 것은 ‘특정한 인류’이지 전체 인류가 아니다”라며 “화석연료를 많이 사용하는 특정 인류가 더 많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펀 교수는 “세계 소비의 75%를 서구 및 일본 등 일부 선진국이 하고 있는데 이를 무시하고 모든 인류가 인류세에 책임이 있다고 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한국의 책임성에 대해서도 “신흥 경제국인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가들과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급격한 산업화로 다양한 환경 문제를 야기하는 국가들에 준하는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류학과 정치학도 인류세 논의에 가세했다. 인류세라는 말은 하나지만 지구 각 지역에서 실제로 경험하는 인류세의 영향은 모두에게 다른 만큼 현장의 경험을 전파하고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학계의 지적이다. 제이미 로리모 영국 옥스퍼드대 교수는 “인류세는 장소와 사람에 따라 양상이 다르게 나타난다”며 “하나의 단일한 시각으로는 분명히 존재하는 차별성을 담아낼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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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이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인류세를 경험하고 있다는 분석은 곳곳에서 나온다. 박범순 KAIST 교수는 “동아시아는 한국과 중국, 일본 등 세계 상위권 온실가스 배출국이 집중해 있는 지역이자 냉전이 현실화된 곳”이라며 “이곳의 독특한 역사를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학자들이 인류세의 시점으로 1950년대를 꼽지만 이 무렵부터 인간 활동이 극도로 제한된 한국의 비무장지대(DMZ)는 다른 곳과 차별된 인류세적 시각으로 바라 볼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아궁 와다나 인도네시아 가드자마다대 교수는 수도 이전 논의 과정에 인류세가 미친 영향을 분석했다. 인도네시아는 수도를 자카르타에서 열대우림이 살아 있는 보르네오섬으로 옮기기로 8월 말 발표했다. 심각한 환경오염과 인구 과밀, 개간, 산림 파괴로 생태적 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인류세적인 영향이 수도 이전이라는 정치적 결정으로 이어졌다는 것이다.

마이클 피셔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 교수는 대형 재난인 2011년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와 2004년 아시아 지진해일이라는 재난 상황에서 인류가 어떻게 피해 극복에 나서는지를 예술인류학의 관점에서 연구하고 있다. 피셔 교수는 후쿠시마 사태 이후 창작된 일본 미술가 무라카미 다카시의 작품 ‘500아라한’을 언급하며 “지진해일의 압도적 느낌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찮지다’라는, 절망하지 않고 나아가는 철학을 동시에 전하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인류세에 관한 학제 간 융합연구를 통해 인류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동력을 얻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스테펀 교수는 “지구는 지금 돌이킬 수 없는 변화가 연쇄적으로 일어나는 ‘임계폭풍’ 속으로 점점 다가서고 있다”며 “서식지를 스스로 파괴하는 현재의 ‘약탈적 자본주의’에 대항하고 효율보다는 공평함을 중시하는 경제학, ‘삶’ 중심으로 시스템을 재편하려는 지구과학을 통해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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